[사설]시장 구청장실에 CCTV 둬야 하는 부패 현실

  • 동아일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돈 봉투를 들고 와 민원을 하거나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올해 3월 폐쇄회로(CC)TV를 시장실에 설치했다.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도 작년 10월 구청장 집무실에 CCTV를 달았다. 두 지방자치단체장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모두 녹화되거나 비서실장 자리에 있는 모니터로 생중계된다.

이 시장은 “시장을 만나려는 면담 요청자가 (그동안) 500명을 넘고 만나면 봉투를 꺼내주려 한다”며 “(내가) 매일 수십억, 수백억 원씩 결제하고 이에 따라 혜택 보는 사람이 바뀌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 청탁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민원인이나 지방공무원의 청탁과 로비 때문에 CCTV까지 설치해야 할 정도이니 지자체 안팎의 부패 유혹이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지자체라고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선거로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걸핏하면 수뢰 혐의로 구속되고 재선거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선거를 치르면서 쓴 돈을 회수하고 다음 선거에 사용할 자금을 마련하자면 시장실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각종 사업 인허가권을 팔아넘기거나 매관매직(賣官賣職)을 하고픈 유혹에 넘어가기 쉬울 것이다.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한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지자체장들이 ‘검은돈’을 받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한 임원은 충남 당진군 석문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해 건설업체로부터 거액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 임원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2600여만 원의 뭉칫돈을 찾아냈다. 통장에 넣지 않고 현금으로 거액을 숨겨두고 있었으니 떳떳하지 않은 돈일 가능성이 높다.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비리사건 연루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임상규 순천대 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 농림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그는 ‘잘못된 만남과 단순한 만남 주선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평생 쌓아온 성취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 부문의 부패는 한정된 재원의 효율성과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각종 이권을 얻으려고 관청과 공기업을 상대로 ‘돈질’을 해대는 일부 민간기업과 개인의 구태(舊態)도 부패 커넥션이 사라지지 않는 요인이다. 검은돈을 받는 사람 못지않게 주는 사람도 엄중 처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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