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했다. 안대로 눈을 가린 기자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에게 ‘이쪽으로 돌라’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21일 서울 강북구 인수동 국립재활원에서 한 장애 체험의 한 장면이다.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신호등을 기다리다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친절을 베푼답시고 “거기는 사람 많으니까 이쪽으로 서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방향을 말해준 적도 손을 잡아준 기억도 드물었다.
휠체어에 앉아 이곳저곳을 다니는 체험은 난코스의 연속이었다. 내리막길에서는 바퀴 옆에 달린 핸들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잠시라도 핸들을 놓치면 바퀴는 갑자기 빨리 돌았다.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온몸이 경직되며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언덕을 오르는 건 더 힘들었다. 몇 번 바퀴를 힘 있게 돌리면 될 줄 알았지만 휠체어가 코스의 반 정도 올라가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을 버둥거릴수록 바퀴는 뒤로 밀렸다. 울퉁불퉁 길을 만나면 휠체어는 덜컹거렸다. 몸 곳곳이 쑤셨다.
지팡이로 길을 찾는 시각장애인 체험은 더 큰 스트레스를 줬다. 앞이 안 보이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도 헷갈렸다. 지하철 승강장이나 도로에 깔린 장애인을 위한 블록의 일자 무늬는 직진이다. 방향을 바꿔야 하는 지점에는 작고 둥근 무늬 블록이 놓여 있다. 발바닥으로 더듬거나 지팡이로 긁어서 무늬를 구별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리 지팡이로 더듬어도 그냥 바닥으로 느껴졌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다 몇 걸음 못 가서 기둥과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사람과 부딪히면 더욱 난처했다. ‘이쪽으로 먼저 가세요’라는 비장애인의 친절은 장애인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누군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방향을 얘기해도 말하는 사람 기준인지, 듣는 사람 기준인지 헷갈렸다.
기분이 점점 묘해졌다. 한 시간 남짓한 체험이었지만 세상의 많은 것으로부터 소외되는 것 같았다. 단지 몸이 불편해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상이었던 세상이 장애물로 다가오자 나는 마음부터 장애인이 돼 갔다.
길에서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때, 관련 복지 정책을 만들 때, 언제라도 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세상 속 장애물이 줄고, 마음이 낳은 장애인이나마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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