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3년간 중소기업청은 이른바 중소기업 고유업종 45개를 단계적으로 해제했다. 1979년 박정희 정부는 중기 고유업종 제도를 도입해 대기업이 뛰어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오히려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사례가 많았다.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어제 ‘중기 적합업종 제도’ 공청회를 열어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중소기업청이 곧 동반성장위의 의견을 받아 시행할 이 제도는 대기업과의 경쟁 때문에 나빠진 중기의 경영 여건이 개선되도록 돕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중기 적합업종에 ‘끼어드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동반성장지수 감점을 주되, 지정한 지 6년이 경과한 업종은 해제하겠다고 한다. 지난날 실패한 중기 고유업종 제도보다 다소 유연하지만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중기 고유업종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을 발전시키려면 이노베이션(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기 적합업종 제도는 약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온실에 가둬 경쟁력 배양을 오히려 해치는 결과를 빚기 쉽다. 더 많은 서민이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하려면 중산층 육성 정책을 써야 하는데 친(親)서민만 강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기업이 시장에 못 들어오게 장벽을 치면 대기업의 이노베이션 동기가 약화되고 총체적으로 국가 기술 발전에 역효과가 날 소지가 커진다. 과거 수도꼭지나 접착제를 중기 고유업종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대기업 기술이 필요한 호텔용 온도감응식 수도꼭지와 반도체용 접착제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30여 년 전 중기 고유업종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의 경제 여건과 지금은 판이하다. 기술 발전과 산업 간 융·복합화의 진전으로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업종의 성격도 끊임없이 바뀌는 시대다. 중소기업이라도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시대는 가고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대책의 달인’들이 제품 찍어내듯 과거의 제도를 먼지 떨어 다시 포장한 졸속 정책으로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굳이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한 업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묶어서도 안 되고 중견기업마저 대기업으로 몰아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