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의 위기 대처에서 배우고 조용히 돕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일본 미야기 현 게센누마 시립보육원 교사는 무시무시한 지진해일(쓰나미)이 몰려오자 5세 미만 영·유아 67명을 인솔하고 인근 3층 마을회관으로 갔다. 2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교사는 아이들을 이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에는 눈까지 내려 아이들에게 커튼을 찢어 뒤집어씌우고 추위를 견디도록 했다. 교사는 이틀째 추위와 배고픔으로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틀림없이 구조된다”고 희망을 불어넣으며 버티다가 자위대 헬기에 전원 구조됐다.

희생자가 무려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 속에서 일본인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대응에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대피소와 쇼핑센터, 주유소, 지하철역에서 그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대피소에서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는 배려가 넘친다.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전력이 부족해지자 도쿄 등 지진 피해가 덜한 지역에서는 주민이 전기 사용을 줄이고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오후 6시 전에 조리를 끝내자는 절전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악의 재앙 앞에서 냉정을 잃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경탄으로 다가온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위기 대응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으로부터 한발 비켜서 있지만 우리에게는 북한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 오후 2시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으로 서울의 주요 시설이 파괴되고 전투기가 공습하는 상황을 가정한 민방위훈련이 실시된다. 강원 경북 울산 등 일부 동해안 지역에서는 지진 및 쓰나미 대비 훈련을 한다. 5월 4일 민방위훈련 때는 전국에서 지진 대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1975년 민방위기본법을 제정해 36년 동안 민방위훈련을 실시했지만 아직도 형식에 흐르는 감이 있다. 국민 각자가 실제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민방위훈련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다. 이번에 일본인들이 보여준 저력은 높은 시민의식과 함께 평소 철저한 지진 대비 훈련 덕분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웃 국가가 겪는 사상 최대의 재난을 못 본 척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구조와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서는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공명심과 경쟁의식이 앞선 나머지 호들갑을 떨다가 도움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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