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한국 축구에는 드라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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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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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프로축구연맹 총재가 됐다. 최근 한 점심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49세인 그는 수줍어했다. 말주변이 없고,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울렁증이 생기고, 술은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소탈해 보였다. 정 총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조카. 재벌 2세라는 마음의 벽은 금세 사라졌다.

그가 물었다. 프로축구를 살릴 방법이 없겠냐고. 체육기자를 하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질문. 밥 잘 먹다가 숨이 턱 막혔다. 축구는 야구와 함께 국내 스포츠의 양대 산맥이지만 인기는 국가대표팀에 집중돼 있다. 출범 29년째인 프로축구는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내공이 출중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답게 여러 답이 나왔다. 팬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감성마케팅을 해야 한다, 공짜 관중을 없애야 한다, 돈 내고 보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16팀은 너무 많다, 1, 2부 승강제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의 질을 높여야 한다, 스타 선수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선수의 몸값과 출전수당이 야구에 비해 턱없이 높아 구단의 효율적 경영에 어려움이 따른다.

여러 얘기 중에서도 스포츠동아 김종건 선배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축구와 야구를 두루 취재했던 그는 한때 기자를 그만두고 전남 드래곤즈에서 축구단 실무도 해봤다. 그는 한국 축구에는 스코어만 있고 드라마는 없다고 했다. 축구 기사를 보면 골 넣은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선수의 환희와 좌절, 희망과 슬픔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

한국 축구의 드라마 실종사건. 그 원인을 짚어보면 프로축구의 잘못된 단면이 보인다. 먼저 축구 기사에 사람 얘기가 부족한 것은 취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야구 기자는 일찍 그라운드에 나가 경기 시작 30분 전까지 더그아웃을 사수한다. 감독과 스타 선수는 항상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농구와 배구 감독은 경기 중간에 방송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감독과 대부분 선수의 휴대전화는 켜져 있다. 하지만 축구에는 이런 게 없다. 최근 일부 구단에서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하다.

팬들이 내 팀이란 인식이 약한 것도 문제다. 지역 연고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프로야구에선 고향팀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반면 축구는 FC 서울과 수원 삼성 정도를 빼면 많은 지역 팬을 확보하지 못했다. 팀이 많다 보니 연고 구단은 자주 바뀐다. KIA 이종범, 롯데 이대호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스타도 별로 없다. 이는 농구와 배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라이벌전이 없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다 보니 드라마의 소재가 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팀당 30경기에 불과해 133경기를 하는 야구에 비해 대하드라마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종목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기록 관리가 제대로 안돼 숫자로 만드는 드라마는 꿈도 못 꾸는 현실은 반성해야 한다.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숫자는 각본 없는 스포츠 드라마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결국 프로축구를 살리는 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를 실천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게 언제나 문제였다. 프로축구는 40대 젊은 총재를 맞이했다. 정 총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축구단 구단주를 맡아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다. 현대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골프보다 축구가 훨씬 좋다고도 했다.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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