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외상의 사임 부른 재일교포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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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일본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이(李) 씨라는 성을 바꾸지 않고 일본의 영웅이 된 재일한국인 축구선수의 이야기를 지난달 소개했다.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국적을 바꾸지 않은 어느 재일한국인이 일본식 이름인 통명(通名)을 사용해 일어난 슬픈 이야기에 관해서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은 올해 48세로 6선 의원이다. 그는 교토(京都)에서 태어나 교토대를 졸업하고 1993년 31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에서 요직인 외상에 취임해 차기 총리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이 자살해 편모 밑에서 커오며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불행했던 학생 시절은 정치를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2006년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간 씨에게 맞설 때 자신의 성장 과정을 밝히며 정치에 대한 열정을 절절히 호소했다. 그의 연설은 지지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유력 후보였던 간 씨를 꺾고 당수가 됐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적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하게 됐지만.

그런 마에하라 씨에게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재일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근처로 이사 온 마에하라 씨를 자식처럼 여겼다. 어렵게 고생하는 모습을 딱하게 여겼고 명문대에 진학한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마에하라 씨가 정치인으로 대성하자 언젠가부터 정치헌금을 내기 시작했다. 1년에 5만 엔(약 70만 원) 정도씩 지금까지 낸 돈은 모두 25만 엔. 마에하라 씨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의원 사무실로 직접 보냈다고 한다. 사무소에서는 헌금 명의가 일본인으로 돼 있어 거리낌 없이 받았다.

재일한국인의 정치헌금 25만엔

함정은 거기에 있었다. 마음이 담긴 개인헌금이었다. 마에하라 씨가 헌금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것은 정치인으로서 빈틈을 보였다고는 할 수 있어도 경솔했다고 할 수는 없다. 친구 어머니였고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기에 귀화했다고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의 정치자금규정법은 외국인으로부터 정치헌금 수수를 금지하고 있다. 만약 고의로 받았다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 엔의 벌금형을 받는다. 국내 정치가 외국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익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득력은 충분히 있다. 외국에도 비슷한 법률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는 자민당 정권에 비밀리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전시대에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면 일대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는 재임 중에 일본 국내 기업을 우회해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비밀자금을 건네받은 사실이 탄로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다. 옛 소련은 일본 내 친소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당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에하라 씨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아들의 친구를 응원하고 싶다는 훈훈한 미담이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인들도 “재일한국인도 일본 사회의 일부인데 문제가 됩니까”라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은 여기에 재일한국인이라는 존재의 어려움이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부터 일본에 살았고, 일을 하고, 물론 세금도 착실히 납부했다. 최근에는 하는 일에 따라 지방공무원으로도 채용될 수 있다 ‘친구의 어머니’가 “헌금이 위법인지 몰랐다”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영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다못해 지자체 선거 투표권 정도는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이 역시 반대가 만만치 않아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마에하라 씨가 지방참정권 부여에 찬성했기 때문에 이참에 자민당 의원이 정치자금 건으로 그를 흔들어보겠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위법일지언정 동정의 목소리 많아

헌금을 낸 분이 한국 이름을 사용했다면 이 같은 오해는 없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를 책망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대 사람이라면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고 장사하면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비록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해도 써 오던 이름 대신 갑자기 본명을 고집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마에하라 씨는 6일 사임했다. 좀 더 버티기를 바랐지만 그는 외상이 국회에서 추궁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고 있는 간 정권에 심각한 타격이었고 일본의 정치혼란을 부추기기는 했지만 나는 이번 문제를 사람들이 과장되게 떠벌리는 것을 슬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헌금을 낸 그분은 “마에하라 씨에게 폐를 끼쳤다”며 잔뜩 풀이 죽어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회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주변에는 오히려 그를 동정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니까.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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