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 외상은 20만 엔 때문에 사임하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일본의 차기 총리감으로 촉망받던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은 중학생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72세의 재일 한국인 여성에게서 2005년부터 4년간 모두 20만 엔(현 환율로 약 268만 원)의 정치헌금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6일 사임했다. 귀화하지 않은 기부자가 일본 이름을 써 외국인 기부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 전후 사정을 보면 순수함이 느껴지는 기부임에도 외국인의 정치헌금을 금지한 실정법 위반을 겸허히 수용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입법 로비’와 관련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회원들로부터 수천만 원씩의 후원금을 받은 일부 국회의원의 행태는 거의 정상배(政商輩) 수준이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료의원들을 끌어들여 재판에 회부된 의원들이 면소(免訴)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그대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국회의원들이 기업이나 이익단체에서 돈을 받고 법을 만들어주는 ‘하청 입법’이 판치게 될 것은 뻔하다. 부패의 합법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돈 정치’의 폐해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정치자금의 수원(水源)이 메말랐다는 불만이 일각에서 터져 나오지만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새로운 정치를 위해 법을 준수하고 돈이 적게 드는 쪽으로 정치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입법권을 남용한 사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세비(歲費)를 5.1% 증액하는 국회예산안을 처리했고, 보좌관(5급)을 한 명 더 늘리는 법안과 전직 국회의원에게 국가 예산으로 매월 120만 원씩을 지원하는 헌정회육성법안도 통과시켰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을 짝짜꿍으로 처리함에 있어서는 여야의 구분이 없다.

심지어 여야 의원 54명은 직계 존·비속의 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지 않게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그 이유로 헌법의 연좌제((緣坐制) 금지 조항을 들먹인다. 직계 존·비속의 불법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의 당락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연루되지 않은 가족이나 친인척의 범죄로 불이익을 받는 연좌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국회의 입법권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입법권 남용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대통령과 헌법재판소가 사후적으로라도 적절히 견제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도 더욱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선진 외국처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입법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입법영향평가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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