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재임 시절(1981∼89년) 그의 평균 지지율은 52.8%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2차 임기 중반에는 이란-콘트라 스캔들 때문에 탄핵 위기에도 몰렸다. 그런 레이건이 퇴임 22년, 사망 7년 만에
존 F 케네디와 빌 클린턴에 이어 최근 미국 대통령 9명 중 지지도 3위로 부상했다. ‘미국 보수주의의 아이콘’인 그를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닮고 싶어 할 정도다.
레이건은 감세(減稅)와 작은 정부가 트레이드마크인 정치인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시절 기록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는 취임 직후 한 차례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지만 나머지
7년 동안 11차례나 세금을 올렸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때는 당시로선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 달러의 세금을 인상한 전력도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그를 ‘위대한 과세자(The Great Taxer)’라고 꼬집기도 했다.
1980년 대선 때 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교육부와 에너지부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어겼고 오히려
국가보훈부를 설치해 정부를 키웠다. 연방 공무원도 8년 동안 28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늘었다. 연방정부 지출을 연평균
2.5%나 늘려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남겼다. 그의 인기를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화(myth)’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 사실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레이건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뭘까.
크루그먼은 레이건을 ‘위대한 과세자’라고 비판하면서도 감세가 무책임했다는 현실을 알고 정책을 바꾼 레이건의 실용주의 리더십과
책임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전임자인 지미 카터로부터 연 13%의 인플레이션과 불황을 물려받았지만 현실을 존중한 융통성 있는
경제정책으로 경제를 회복시켜 재선에 성공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공격하고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해 결국 소련을 몰락시켜 미국인의 자부심을 높인 것도 레이건의 인기 요인이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레이건의
공로를 인정한 미국인은 14%에 불과했다. 반면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공을 돌린 사람은 43%나 됐다. 레이건의 대(對)소련
정책은 당시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원은 ‘심지어 국무부와 백악관
보좌관들조차 비판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공산주의는 사라져야 할 악’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국민을 설득해 목표를 이뤄냈다.
그는 ‘위대한 소통자(The Great Commu-nicator)’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비범한 소통 능력을 가졌다. 취임 초 100일 동안 49차례에 걸쳐 의원 467명을 만났을 정도로 의회와의
소통에 공을 들였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편해졌다는 탁월한 연기력과 암살을 모면한 직후에도 여전했던 유머 감각과 낙천주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인기 비결이다.
레이건의 부활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보수세력은 부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이 정부는 부패와 민생문제 해결에 무력해 40년 만에 잡은 정권을 10년 만에 내준 좌파를 닮아가는 듯하다.
‘창성동 특보 별동대’에 레이건 부활의 진짜 원인을 찾아내 한국 보수의 미래를 모색토록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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