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11·23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책임이 김병기 전 국방비서관에게만 있을까? 김희정 대변인이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받아 춘추관에 전달했다는 과정이나 전달에 관여했다는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이희원 안보특보, 김 국방비서관 등 외교안보 라인과 홍상표 홍보수석비서관을 비롯한 홍보라인은 군과 국민에게, 북한으로 전달될 대통령의 메시지를 면밀히 검토해 정돈된 내용을 내놓았어야 한다. 국군 통수권자가 어떻게 비상사태의 성격을 규정하고 어떠한 결의를 보이느냐가 전쟁의 승패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일이다. 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9·11테러 발생을 보고받은 지 26분 뒤에 ‘이번 사태는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의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의 일성(一聲)을 정교하게 조율해 내보냈다. 이후 당국자들의 발언은 ‘미국에 테러리즘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행동방침에서 한 치의 혼선도 없었다.
청와대의 ‘확전 자제’ 논란은 그런 점에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참모진의 ‘보좌 실패’다. 참모진의 수장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다. 그는 7월 취임 이후 각종 인사를 비롯해 여러 업무에서 초대 류우익 실장을 능가하는 실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깊숙이 관여한 8·8 개각에서 국무총리와 2명의 장관이 낙마했는데도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다. 청와대의 기강부터 바로세우는 것이 눈앞의 과제다.
청와대 못지않게 국민을 걱정시키는 곳이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은 1일 국회 정보위에서 “지난 8월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대규모 공격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일부 의원의 질문에 “그런 분석을 했다. 청와대에도 보고됐다”고 답변했다. 첩보를 확보하고도 정보 판단을 소홀히 해 연평도 포격 도발을 제대로 예측, 대처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군과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원세훈 원장이 발언 당사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정원 참모들은 줄곧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대북 공작·정보 전문가들을 대거 옷을 벗겨 국정원의 역량이 약화됐다. 인사부터 바로잡으라는 것이 원세훈 원장을 임명한 대통령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천안함에 이어 연거푸 ‘정보의 실패’에다가 대북첩보공작 경위까지 노출시키는 모습을 보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권의 주요 포스트를 맡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대해 남 얘기 하듯 고개를 돌리는 풍조는 뿌리가 깊다. 6·2지방선거 때 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정두언 의원은 선거 패배 후 되레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던 정병국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됐다.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정작 궂은일, 험한 일, 책임질 일에는 먼 산 쳐다보는 참모들로는 사방 천지에서 예고 없이 날아올 수 있는 화살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꽂힐 수밖에 없다.
‘경제대통령은 바로 뽑은 것 같은데, 안보대통령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는 자탄이 보수층 저변에서 나온다. MB 정권 실세라는 ‘왕의 남자들’은 가슴을 치고 자책해도 모자랄 판인데 다들 무사태평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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