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연평도 사태에 대한 대(對)국민담화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국가보위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해 대통령이 사과의 뜻을 표명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은 착잡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북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 후 두 달 만에 행한 ‘5·24특별담화’에서도 같은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천안함 피격 후 8개월 동안 국방개혁 구호가 무성했으나 연평도 사태에선 그런 화려한 구호가 무색했다. 개혁 구호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낄 정도다.
정부와 군을 믿고 국민이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도록 안보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 일정을 빨리 국민 앞에 내놓아 시의적절하고 내용 있는 개혁으로 국방의 실질을 바꾸기 바란다. “최고 성능을 갖춘 최신 무기로 서해 5도를 무장시키겠다”는 화려한 말잔치 대신에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고 국민에게 점검을 받아야 한다.
연평도 피격에서 군이 즉각적인 몇 배의 응징을 하지 못한 것은 무기체계 및 장비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북을 능가하는 전투기와 고성능 미사일도 응징 수단이 될 수 있다. 무기와 장비가 문제라면 국민의 국방비 부담을 늘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더 근원적인 데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작전의 최고책임자인 합참의장, 군 수뇌부 사이에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고 우리는 본다. 군 관계자들은 현재 대통령과 군 사이가 너무 멀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과 군의 응징 의지 및 정신력이 유약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대통령과 합참의장이 유사시에 대비한 대북(對北) 전략과 작전개념을 공유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도발 때마다 대응 수준을 놓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군은 작전영역에서 지휘관의 책임하에 독자적 역할을 못하고, 대통령은 지나친 개입으로 작전에 혼선을 주어 응징의 때를 놓치는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대통령의 말을 다시 한번 믿고 싶지만 지금 국민의 마음은 한참 멀어져 있다. 우선 5·24담화의 내용 중 무엇을 실행하고, 무엇은 진행 중이고, 무엇은 지키지 못할 것인지 점검표부터 만들기 바란다. 지금은 구호가 아니라 비장한 결단을 통해서만 대통령과 군, 그리고 국민 사이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