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광우병과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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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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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배추값 폭등을 4대강 탓으로 몰았다. 4대강 둔치의 배추 재배 면적을 정부는 전체의 0.3%라 하고, 야당은 10%가 넘는다고 주장하지만 4대강 사업이 배추값 폭등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다. 배추값이 폭등한 것은 이상 고온과 잦은 비로 해발 400m 이상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채소의 작황이 나빴기 때문이다. 배추값 폭락이 시작되면서 4대강 사업을 들먹이던 사람들이 머쓱하게 됐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을 격분시키려는 의도였다면 광우병 촛불시위 때의 거짓 선동과 무엇이 다른가.

4대강 사업이 ‘위장된 대운하 건설’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내세우는 근거 중에도 어처구니없는 것이 많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구와 구미의 항구도시화 구상’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작년 12월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발간한 ‘수변(水邊) 공간·도시 디자인 전략 연구’ 보고서를 근거로 “정부가 대구와 구미를 항구산업 대상 도시로 선정한 것은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전초 사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보고서에 명기된 ‘항구산업(Port and Industrial Complex)’은 영어 표기에서 보듯이 항구도시와 산업도시를 합친 개념으로 부산과 목포 등은 항구도시로, 대구와 구미 등은 산업도시로 분류해 각기 수변 공간을 고려한 도시의 디자인 전략을 언급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항구산업’의 의미를 잘못 파악해 마치 대구와 구미를 항구도시로 만들려는 것인 양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 3월 대구경북지역 업무보고에서 “대구는 항구도시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을 대구항, 구미항 구상의 근거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포항하고 도로가 뻥 뚫렸는데 (포항의 영일만항을) 대구 항구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대구가 내륙이라고 너무 불리하게만 여기지 말라는 격려성 발언이었던 것이다.

정부의 해명이 아니더라도 대구·구미항 구상이나 대운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을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대형 선박이 운항하는 대운하를 만들려면 수위 조절용 갑문과 터미널의 설치, 강의 직선화, 모든 구간에서 200∼300m의 수로 폭과 6m 이상의 수심 확보, 높이가 낮은 교량의 교체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계획도 없고, 그렇게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도 않다. 나중에 대운하로 개조하려면 이미 설치된 보의 철거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한다.

광우병 촛불시위 세력은 곡해(曲解)와 아전인수(我田引水), 억지, 거짓말까지 동원해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인정된 미국산 쇠고기를 졸지에 광우병 쇠고기로 둔갑시켰다. MBC PD수첩이 선동의 불을 지폈고, 얼치기 전문가들이 나서 여중생들까지 길거리로 끌어냈다. 인터넷은 거짓을 퍼 날랐고, 시민·사회·노동·환경·종교단체들은 투쟁에 나섰다. 야당들은 그들과 어깨동무를 했다. ‘광우병’이 ‘대운하’로 대체됐을 뿐 주장의 허구나 전개되는 양상이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닮았다.

한미 쇠고기 협상 주역이었던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자신의 저서에서 “촛불시위 사건의 본질은 쇠고기도 언론 자유의 문제도 아닌, 이명박 정부를 향한 증오와 이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 반대의 속내도 환경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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