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짜 ‘한반도 평화 훼방꾼’은 누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한국 정부를 가리켜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말했다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어제 “확인해본 결과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공식 부인했다. 지난해 5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의 면담 내용을 기록한 주중(駐中) 대사관 면담요록과 김 전 대통령 측 면담록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신정승 당시 주중 대사를 비롯한 정부 측 배석자들도 그러한 언급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최경환 김 전 대통령비서관의 증언은 엇갈린다. “평화 훼방꾼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비판 발언은 있었다”거나 “(평화훼방꾼 얘기를 포함해) 박 원내대표의 말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오락가락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평화 훼방꾼’ 발언은 없었던 것 같다.

발언의 진위와는 별개로 양국 지도자급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놓고 1년 5개월이 지나서 말을 했느니, 안 했느니 뒷공론을 일으키는 자체가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외교문제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을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 쏟아내는 것은 신중치 못한 처신이다. 자기 과시를 하거나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워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한중 외교관계를 해치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도 매끄럽지 못한 것을 정부는 알기 바란다”며 시진핑 시대를 맞아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중국의 위세를 빌려 남북대화를 압박하는 것도 사대주의 행태다. 박 원내대표는 9월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외교가 ‘천안함 진실 덮기용’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해 논란을 빚은 일이 있다. 국가안보가 걸린 외교를 번번이 정쟁용으로 끌어 쓰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고 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진짜 ‘평화 훼방꾼’은 바로 천안함을 폭침(爆沈)시키고 3대 세습을 진행하는 북한이 아닌가. 북한의 평화 파괴에 대해서는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들기에 급급한 박 원내대표의 행태를 납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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