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범]‘남격’과 ‘명품녀’의 차이

동아일보 입력 2010-09-30 03:00수정 2010-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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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세계적인 영화음악계의 거장이다. 여든이 넘은 이 노작곡가는 유독 미국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리코네는 아카데미상 음악 부문에 다섯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그중 1987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아직도 가장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그해 모리코네는 영화 ‘미션’의 음악으로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상에는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이 버티고 있어 다른 부문의 수상 전망은 어두웠지만 음악 부문은 모리코네가 확실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상 음악 부문은 재즈 영화 ‘라운드 미드나이트’의 허비 행콕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모리코네 옹의 남다른 한(?)이 맺힌 ‘미션’의 음악이 25년이 흘러 다시 화제다. KBS 2TV ‘남자의 자격-남자, 그리고 하모니’(남격 합창단)에서 합창단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 덕분이다. 물론 노래 자체의 매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이 노래를 부른 ‘남격 합창단’이 남긴 깊은 감동이 인기의 더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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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이자 키워드는 ‘리얼(real)’이다. 잘 꾸며진 허구의 세계보다 조금 투박하고 엉성하더라도 현실에 바탕을 둔 생생한 스토리와 화제가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남격 합창단’의 주역들, 이 시대 리더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른 ‘칼린쌤’ 박칼린을 비롯해 방송 전만 해도 무명이던 신인 배다해, 리포터 선우, 노래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서두원 등에 열광한 것은 그들이 정교한 각본에 맞춘 ‘연기’가 아닌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신뢰는 제작진과 출연자가 “우리는 100% 리얼”이라고 수없이 말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합지졸 합창단을 하나의 하모니로 만들어 가는 박칼린의 솔직한 열정에서 “가슴에 품고 죽을 때까지 못해볼 수도 있는 것을 했다”며 울먹이는 파이터의 모습까지 하나씩 모여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남격 합창단’이 남긴 진한 여운은 국회까지 논란이 됐던 이른바 ‘명품녀’ 파문과 극명히 대비된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이냐’를 두고 진실게임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관계자와 소송이 오가는 진흙밭 싸움이 됐지만 따지고 보면 논란은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리얼 스토리’를 강조한 케이블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우리도 그녀에게 속았다”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그녀의 말을 사실로 믿었기 때문에 방송을 했고, 그래서 그들도 속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만약 세인을 놀라게 한 ‘명품사랑’이 전혀 꾸밈이나 과장이 없는 100% 사실, 즉 ‘리얼’이라면 제작진과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허구가 아닌 ‘리얼 스토리’가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프로그램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이냐는 것이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남격 합창단’과 같은 감동과 눈물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시청자가 매번 그런 내용에 호응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리얼 스토리’를 예능 프로에서 다룰 때는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한번쯤 고민해 보자. 기획과정에서는 작은 차이일지 몰라도 방송 이후는 ‘남격’과 ‘명품녀’ 만큼의 큰 차이가 생긴다.

김재범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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