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세형]어느 재정부 과장의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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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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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 운동을 못 하니까 피로가 잘 안 풀린다며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동 부족이 아니라 병 때문에 피곤했던 거죠.”

20일 간암으로 숨진 김진선 기획재정부 국유재산과장(54)의 빈소를 지키던 재정부의 한 간부는 “워낙 성실한 분이라 간암같이 심각한 병의 증세를 그저 과로로 인한 피로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3일 발인을 앞두고 김 과장의 빈소를 찾은 다른 전현직 재정부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과장은 정부부처 중 업무가 많고, 경쟁이 심하기로 유명한 재정부에서 7급 공무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과장까지 오른 관료다. 그는 그동안 방치돼 왔던 국유재산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국유재산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올 들어 유독 바빴다.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외 출장도 잦았다. 한 재정부 직원은 “재정부가 생긴 이래 국유재산과가 올해처럼 바빴던 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과장은 건강이 안 좋은 것을 알았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안색이 안 좋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찾는 대신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피곤함을 극복하려고 했다. 직원들에게는 “국유재산 관리방안이 다 마무리되면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말도 했다.

결국 김 과장은 5월 말 재정부 직원 대상 정기검진 때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간암말기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약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 과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국유재산 관리제도 개선방안’은 간암 말기 확진 판정을 받을 무렵인 6월 22일 발표됐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업무가 편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공무원이 안이한 업무행태로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출입기자로서 재정부에 나가면서 바라본 중앙부처, 특히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삶은 결코 편해 보이지 않았다.

올해처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청년실업 개선’ ‘지방자치단체·지방공기업 재정건전성 강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큼직한 사안이 있을 땐 더욱 그렇다. 공직사회에 엄정한 잣대를 요구하는 만큼이나 김 과장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공무원에 대한 칭찬은 인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 부처를 떠나려는 관료가 줄을 잇는 상황에서 자칫 자신의 죽음이 이를 부채질하는 것을 그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세형 경제부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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