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경질도 人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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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쌀 개방이 결정돼 민심 수습이 필요했을 때 김영삼(YS) 대통령은 황인성 국무총리를 사퇴시켰다. 1997년 3월엔 한보사태와 차남 현철 씨 비리로 위기에 몰리자 이수성 총리를 교체했다. 취임 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1993년 3월 7일에는 하나회 출신 군부 실세였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육사 17기)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육사 19기)을 전격 경질했다. YS식 인사에 대해선 평가가 여러 갈래일 수 있으나, 인사가 갖는 대국민 메시지를 극적으로 살린 사례로 흔히 인용된다.

▷임기를 7개월 남겨둔 강희락 경찰청장이 5일 갑자기 사퇴 의사를 밝힌 배경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강 청장은 “집권 후반기 국정쇄신을 위한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후진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수사, 아동 대상 성범죄 빈발, 하극상 사건 등 난맥상으로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용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2년인 경찰청장을 차차기(次次期)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교체시기를 앞당김으로써 경찰조직 장악을 노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강 청장이 1년 반 가까이나 재임했다며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으나 ‘오래했다고 그만두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과 상충된다.

▷정운찬 총리는 6·2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 직후를 포함해 3차례나 사의를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모호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7·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사퇴를 공식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해 안타깝게 여긴다”며 수용했다. 결국 정 총리의 교체가 세종시 부결 때문인지, 임기 후반 국정면모 쇄신을 위해서인지가 불분명해졌다.

▷경질도 중요한 인사(人事)다. 교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는 인사라면 메시지 측면에서 성공한 인사라 할 수 없다. 주요 공직자를 슬그머니 교체하면서 명확한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인사의 대국민 호소력,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사의 뜻이 무엇인지 인사권자가 투명하고 명료하게 밝히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국민 소통일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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