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교육청 직원들은 “교육감 결재받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결재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곽노현 교육감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각계 인사들이 면담을 신청하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자 청사 출입관리도 전보다 엄격해졌다.
그런 상황이라 친(親)전교조 성향의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가 27일 곽 교육감을 만난 것은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곽 교육감을 찾아온 ‘목적’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참학은 이날 교육감 직속의 ‘학부모사업지원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참학은 제안서에서 “새로운 학부모상 정립을 위해 관련 사업을 기획하는 지원센터를 교육감 직속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득 지난해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에서 소외된 학부모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며 학부모지원과를 설치하고 ‘학부모교육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할 때가 생각났다. 당시 참학은 “관변 학부모단체를 양성할 뿐”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시교육청에 학부모지원센터를 만들라고 먼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참학의 요구는 진보성향의 곽 교육감 취임을 계기로 진보성향 학부모단체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제안서를 보면 우선 교육청 관계자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부모사업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기구의 위상과 소요 예산을 논의한 뒤 상설기구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설기구 조직표에 따르면 대부분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교육전문가 등 외부 인사로 구성돼 있다.
참학은 학부모지원센터가 우선 추진할 사업의 하나로 ‘학부모교육’을 제시했다. 교육 내용에는 곽 교육감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혁신학교 탐방교육도 포함했다. 곽 교육감과 참학의 노선에 찬성하는 학부모만 참여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교과부의 학부모교육에 반대했던 이들의 전력(前歷)까지 생각해 보면 같은 성향끼리만 ‘소통’하겠다는 폐쇄성이 느껴진다.
출항 한 달이 지난 곽노현호(號)는 비서실, 징계위, 인사위에 외부 인사를 파격적으로 기용했다. 개혁의지가 눈길을 끌었지만 진보 일색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학부모정책에 학부모가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내건 ‘민관 합동 거버넌스’가 진보성향 단체의 영향력 키우기 창구가 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과부는 관(官)이고 곽노현 교육청은 관이 아니라는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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