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릭 러핀]출산장려에 가려진 한국인 삶의 질

  • 동아일보

한국 정부는 저출산율이 미래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정말 그렇게 나쁘기만 할까. 한국의 인구밀도는 1km²당 500명에 이른다. 세계 평균의 10배, 미국의 15배이다. 호주의 200배에 이른다. 인구밀도는 삶의 질과 관련이 깊다. 높은 인구밀도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정원과 풀이 있는 주택 대신 다른 사람의 집 위에 층층이 집을 짓고 사는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주차장이 충분치 못해 출근길 이웃의 차를 밀어내야 하는 유일한 국가다.

인구 증가는 농지에도 큰 부담을 준다. 한국은 1960년 이후 도시화로 농지의 40%가 줄었다. 병충해나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 때문에 몇 년 연속 작황이 심각하게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자. 현재의 곡물 비축량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 경작지 부족으로 해외에서 경작지를 사들이는 일이 합리적일까.

개인의 삶의 질 역시 떨어진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오염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호흡기 질환과 소음, 온실가스, 기온 상승, 예측 불허의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세균의 번식 역시 쉬워지고 신선한 공기나 여유로운 공원, 대지, 그린벨트 역시 부족해지기 쉽다. 계속 늘어만 가는 인구 때문에 한국이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일자리조차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까지 출산장려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한국 정부는 노르웨이나 프랑스를 벤치마킹 상대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는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프랑스는 1km²당 111명, 노르웨이는 17명에 불과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국토가 광활한 국가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사람으로 붐비는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인이 자신의 문화와 유산에 대단히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잘 안다. 한국 문화의 종말을 옹호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구라는 공간에서 인류 전체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제한 없는 성장의 필요성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없다.

릭 러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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