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그라운드서도 거리서도 이젠 축구 자체를 즐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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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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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 축구대표팀이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고 1승 1무 1패로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에 진출하는 순간 2002년 6월 14일 열린 한일 월드컵 D조 예선 마지막 경기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당시 박지성이 그림 같은 트래핑에 이어 왼발 슛으로 골을 넣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을 1-0으로 잡고 2승 1무로 사상 첫 16강을 확정지었을 때 팬들은 물론이고 취재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고 서로 껴안으며 감격을 만끽했다.

이날도 그랬다. 관중 6만1000여 명 가운데 스탠드 군데군데서 응원한 500여 붉은악마 팬과 함께 한국 취재진 모두가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그만큼 감격스러웠다. 국내에서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팬이 밤을 지새우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장면을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지켜봤다. 대한민국 4900만 국민은 모두가 축구 하나로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이제 태극전사들은 26일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열리는 16강전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8강에 도전한다. 지금까지 올라온 기세로 보면 승산은 충분하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해 주장 박지성과 골잡이 박주영 등 모든 선수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8강에 대한 각오를 밝히고 있다. 팬들은 8강을 넘어 4강 신화를 재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우리는 이미 17일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어 달라는 기대가 컸고 선수들도 그에 대한 부담이 있다 보니 예상과는 달리 1-4로 대패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달 4일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0-1로 아깝게 졌지만 아르헨티나에 대패한 것은 지나친 부담감 때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16강이란 1차 목표는 달성했다. 8강에 가면 더 좋겠지만 이제부터는 태극전사들도 진정으로 월드컵을 즐길 때가 됐다. 사실 허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유쾌한 도전’이라고 선언했지만 그를 비롯한 선수단은 16강에 오르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만으로도 8년 전 4강 신화 그 이상의 감동을 누렸다. 이제 우리도 축구를 즐길 때가 됐다. 승패에 상관없이 태극전사들에게 열렬한 갈채를 보내며 한국축구 못지않게 응원문화도 한층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자.

―더반에서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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