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계룡시는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논산군 두마면이었다. 1989년 육해공군 본부가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군부대 이전에 따른 주거인원이 대폭 증가할 것을 예상해 1991년 계룡신도시 특정 지역으로 지정되고 2003년에 계룡시로 승격됐으나 아직도 시 기준인구(5만 명)에 모자라는 4만3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육해공군 본부라는 거대한 군 행정조직을 주축으로 신도시가 형성되기를 기대했으나 상권의 형성 및 주택분양 등 도시발전이 정체된 실정이다.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 어느 나라든 국방정책의 핵심 기관인 국방부와 합참 및 각 군 본부는 그 나라 수도에 위치해 있다. 북한 역시 평양의 인민무력부 산하에 위치하고 있다. 국가 위기시 국가 통수권자의 지근거리에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군령권을 보좌하기 위해서다.
계룡대 시설 역시 국가 위기 시 정부기관의 이전을 목적으로 했으나 계획이 변경되면서 계룡대만 이전하게 됐다. 휴전선으로부터 40km밖에 안 되는 곳에 국가통수기관이 위치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당연히 서울에 각 본부가 위치하는 것이 필수다. 당시 각 군 본부의 이전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반대했으나 결국 고위 정책 결정자에 의해 육해공군 본부가 1989년 7월 대전 계룡대로 이전했다.
각 군 본부는 상급기관인 국방부, 합참과 멀리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예로 육군참모총장은 계룡대와 서울에 각각 사무실과 공관을 두었다. 시설관리 인원 물자 예산을 2중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하지 않고는 업무를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 계룡대에 근무하는 인원의 40% 정도만이 거주하다 보니 가족이 수도권에서 주말에 계룡대로 오거나 간부가 외출을 가면서 시간과 돈을 길에서 허비하는 셈이 된다.
세종시의 경우를 보자. 필자는 2002년에 한국토지공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해 12월 17일이 16대 대통령 선거일인데 선거를 앞둔 11월경 당시 여당의 고위정책담당자(본인과 학교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거 전략으로 충청권에 수도이전을 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이를 위한 자료와 인원을 지원할 수 있겠냐”라는 내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토지공사는 한국의 토지정책을 주도한 국가기관이라 자료는 항시 준비가 돼 있으므로 “곧 할 수 있다”고 대답한 뒤 자료와 함께 공사 직원을 파견했다.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점은 현재 국론분열의 상황까지 부르는 세종시 문제는 사전 계획검토 없이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짧은 시간 내에 급조되어 공약으로 발표된 선거 전략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원안대로 정부부처를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한다면 20년 전에 육해공군본부가 계룡대로 이전한 뒤에 발생한 문제점과 무엇이 다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문제는 낙후된 충청권의 균형발전을 위해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당리당략이 아닌 국가와 또 해당 지역의 발전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안보 차원의 문제도 중요하다. 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작전계획 5027을 갖고 있다. 북한의 선제공격을 수도권 북방에서 저지하는 내용이 기본개념이다. 이를 행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다른 행정부처는 충무계획을 수립해 놓았다.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민관군이 따로 없다. 수도권 방어를 위해 국가통수기관은 서울에서 군을 지휘하는데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세종시라는 한반도의 중부지방에 분할되어 위치하고 있다면 전시 지원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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