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막걸리를 세계인의 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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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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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처연한 것? 아니 상큼하고 발랄한 것!

우리 국악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공연장이나 TV에서 보는 ‘젊은 국악’은 예전의 국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다. 실력과 배짱을 가진 젊은 음악인들이 국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퍼포먼스와 결합해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악이 이토록 신나는 음악이고, 가야금이 하프보다 더 화려한 음색을 지녔을 줄이야. 퓨전국악 걸그룹 ‘미지(未知·MIJI)’가 ‘소녀시대’보다 섹시한 건 어떻고….

10여 년 전 일본에서 안숙선 명창의 창극 ‘심청’ 공연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심청전, 그 뻔한 스토리가 그렇게 감동적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우리말을 못 알아들어 자막을 보는 일본인들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것을 보고 벅차오르던 자부심….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를 자기 나라 말로 들을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콤플렉스를 그때 던져 버렸다. 최근 젊은 국악인들의 손에서 재탄생하고 있는 국악은 그때와는 또 다른, 신선한 감격이다.

우리 전통문화 중에서 국악처럼 환생(幻生)하고 있는 것을 또 하나 들라면 단연 막걸리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이사를 하거나 잔치를 할 때 큰 함지박에 담겨 있던 막걸리의 냄새, 아버지 친구 분이 오시면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주전자 입에 대고 한 모금씩 훔쳐 먹던 추억을 갖고 있다.

그 시큼한 막걸리가 젊은이들에게 첨단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신촌 홍익대 앞에는 막걸리바와 막걸리카페가 생겨나고 젊은이들은 예전에 와인을 알아맞히듯 막걸리 종류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꺼∼억’ 하는 트림에 고개를 돌리던 기억, 카바이트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고 다음 날 뒷머리가 아프던 악몽을 이들은 갖고 있지 않다.

미제와 일제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던 때와도 다르다. 되레 이들은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하면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LG전자 TV가 세계 어디서나 각광받는 것을 보았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봉사활동을 떠나고, 휴학을 한 채 1년씩 배낭여행을 떠날 만큼 국제화됐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활하는 전통문화가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대들은 이미 세계 다른 나라를 많이 봤고 비교도 해봤다. 그러고 나서 더욱더 우리가 만든 것, 우리의 것에 대해 자부심이 넘친다. 21세기의 필수품인 창의성이란 이처럼 우리만 가진 역사, 문화, 개성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문화’ 사랑은 이제 시작이다. 막걸리 열풍이 50세주(백세주와 소주를 반씩 섞은 것)처럼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원산지와 재료가 명확하지 않은 막걸리들이 돌아다니고 술을 담을 잔도 마땅치 않다.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원산지표시제, 등급인증제 등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종류도 다양해져야 하고, 궁궐과 대갓집에서 마시던 고급 막걸리도 더 많이 부활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의 활력을 살릴 수 있도록 진입 규제를 완화해야 하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막걸리가 우리 술을 넘어 프랑스의 와인이나 일본의 사케처럼 ‘세계인의 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전망은 밝다.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으니까.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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