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남극서 귀환 김예동 대륙기지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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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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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성능 탁월… 제2 남극기지 탐색도 성공”

남극 탐사를 마치고 22일 귀국한 김예동 극지연구소 대륙기지건설추진위원장은 “아라온호와 2014년까지 건설할
제2남극기지가 한국의 남극 대륙 진출에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남극대륙 동남쪽에 있는 테라노바 만에 상륙해 현지
기후와 지형 등을 조사하는 김 위원장 뒤로 거대한 빙산이 떠 있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남극 탐사를 마치고 22일 귀국한 김예동 극지연구소 대륙기지건설추진위원장은 “아라온호와 2014년까지 건설할 제2남극기지가 한국의 남극 대륙 진출에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남극대륙 동남쪽에 있는 테라노바 만에 상륙해 현지 기후와 지형 등을 조사하는 김 위원장 뒤로 거대한 빙산이 떠 있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한국의 첫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을 탐사한 극지연구소 과학자들이 22일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과학자 27명을 이끌고 남극의 얼음바다를 개척하다 돌아온 김예동 극지연구소 대륙기지건설추진위원장(56)은 23일 “아라온호는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쇄빙 연구선”이라며 “이번 탐사 결과를 토대로 2014년까지 새로운 남극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귀국하자마자 새 남극기지 건설 준비로 바쁜 김 위원장에게서 지난해 12월 18일 시작한 아라온호의 남극 탐사 이야기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2004년 초대 극지연구소장을 지내고, 지금까지 25회나 남극 탐사에 참여한 국내 최고의 극지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남극 날씨가 거칠어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이달 9일쯤이었던 것 같다. 남극 대륙 테라노바 만에 상륙해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서 블리자드(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 초속 20m의 눈바람이 몰아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극에선 날씨가 좋다가도 갑자기 이런 상황이 생겨 위험해질 수 있다.

빨리 헬기를 타고 아라온호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가까운 산에 올라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다 사람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가 말랐다. 다행히 동행한 등산 전문가가 산에 올라간 사람들을 로프로 이어 묶어서 내려왔다. 우리 사이에서는 이런 걸 ‘굴비 엮는다’고 말한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모두 아라온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라온호가 쇄빙에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극해에 도착해 얼음을 깨며 전진하는 첫 시도에서 잘 안됐다. 당시 배에 탄 연구원이나 배를 만든 한진중공업 관계자, 승조원 모두 입도 떼지 못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마디로 초긴장 상태였다.

그날 밤 회의를 열어 원인을 찾아봤다. 배를 기준보다 무거운 상태로 유지하는 바람에 바다에 너무 깊이 잠겼다는 걸 알아냈다. 회의를 마치고 배에서 물을 뺐는데 무게를 맞추는 데 8시간이나 걸렸다. 다음 날 배를 몰고 도전했지만 될지 안 될지 조마조마했다. 그 순간 배가 얼음을 깨고 전진하면서 점점 속도를 높였다. 마침내 목표인 3노트(5.5km)에 도달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라온호는 3.5노트까지 시험에 성공했다. 쇄빙선이 되려면 두께 1m의 해빙을 뚫고 3노트로 직진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쇄빙성능 기대보다 좋아
목표속도 돌파 때 환호
얼음 밀려나는 모습 보면
남극대륙의 공룡 된 느낌”


―쇄빙선이 얼음을 깨며 전진할 때 느낌은 어떤가.

“많은 사람이 배가 ‘꽈광’ 하는 소리를 내며 얼음을 깨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건 얼음이 너무 두꺼워 배를 얼음 위에 올려 깰 때나 그렇다. 아라온호는 기본적으로 두꺼운 선체로 얼음을 밀어붙여 깨뜨린다. 실제로는 배가 얼음을 부드럽게 ‘슥’ 밀면서 전진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서 얼음이 깨지며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 통쾌하고 시원하다. 내가 남극의 얼음 평원 위에서 거대한 공룡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처음 만든 쇄빙선을 타고 생활해보니 어떻게 다른가.

“남극 바다에서는 7487t급의 아라온호를 타도 뱃멀미가 아주 심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뱃멀미가 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김치찌개와 라면 아닌가. 이번 탐사에는 우리 음식을 든든히 준비해서 맘껏 먹었다. 속이 든든하니 탐사에도 큰 도움이 됐다. 과거 외국 쇄빙선을 탔을 때는 멀미를 하고 속을 모두 게워낸 뒤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정말 고역이었다.

외국 쇄빙선을 여러 번 타봤는데 최신 기술로 만든 우리 쇄빙선이 좋다는 걸 새삼 느꼈다. 배 안에서 38일 정도 있었는데 ‘조선(造船) 강국’ 한국의 배를 탔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제2 남극기지 후보지는 어디로 정했나.

“이번 탐사의 가장 큰 목적은 남극 대륙에 지을 제2 남극기지의 후보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1988년 세운 세종기지는 남극 대륙 서북쪽 킹조지 섬에 세워 연구 등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이번 탐사에서 대륙 서남쪽에 있는 케이프벅스와 동남쪽에 있는 테라노바 만 두 곳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서 얻은 정보를 분석해 다음 달 10일 민관협의회를 열어 최종 후보지를 결정할 것이다.

두 곳 모두 장단점이 있다. 케이프벅스에는 다른 나라 기지가 없어 독자 연구를 할 수 있지만 땅이 좁아 생활이 힘들 것 같다. 테라노바 만은 땅도 넓고 연구 환경도 좋다. 그러나 주변에 독일과 이탈리아 기지가 있어 그들을 뛰어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2014년까지 제2 남극기지를 짓는 것이 목표다.”

―제2 남극기지에서는 무엇을 연구하나.

“중요한 연구테마의 하나는 ‘기후변화’다. 두 후보지는 남극에서도 기후변화가 심해 다양한 연구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대륙에 기지를 세우면 빙하를 비롯해 천문우주 운석 등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 남극 빙하 속에는 과거 기후 기록뿐 아니라 잘 보존된 운석이 가득 쌓여 있다. 아라온호와 제2 남극기지는 한국이 남극 내륙까지 진출할 교두보가 될 것이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아라온호:
길이와 폭이 각각 111m, 19m에 이르며 무게는 7487t이다. 최대 속도는 16노트(시속 30km)이며 85명까지 태울 수 있다. 1m 두께의 얼음을 시속 5.5km로 깨며 항해할 수 있도록 건조됐으며 선체 철판의 두께는 일반 배의 2배인 40m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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