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무하]한식 세계화, 친숙함이 우선이다

  • 동아일보

중국 춘추시대 말기 철학자 한비가 지은 한비자라는 책을 보면 제나라 왕이 당대의 유명한 화가에게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가 나온다. 화가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개와 말이고(犬馬難),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은 귀신과 도깨비라고 하였다. 개와 말은 모든 사람이 잘 알아 그려놓으면 누구나 한마디씩 비판을 하기 때문에 그리기 어렵고, 귀신이나 도깨비는 사람들이 본 적이 없어 어떻게 그리던 비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기 쉽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100년 대계를 다지는 교육정책이나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식품정책이 이와 같은 경우다. 최근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국가적인 어젠다로 추진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이 한식 세계화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외국 한식당의 대표적 성공사례를 들며 세계화 추진방향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업의 추진방향이 중심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식사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의식의 하나다. 음식은 나라와 문화의 상징으로서 대표적인 국가이미지 상품이다. 이성적 의식인 외교공식행사 다음에 반드시 만찬이 뒤따르는 이유는 식사가 감성적 관계 형성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과 문화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며, 한식 또한 음식 자체의 건강 지향적 개념과 음식 외의 전통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하나의 브랜드 상품으로서 세계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새로운 외국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 성격에 많이 좌우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위험이나 위협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이는 음식을 접하기에 앞서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화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가진 상태에서 가능하다. 결국 세계시장에서 익숙한 음식과 그런 문화로 접근할 때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으며 한식이라는 새로운 음식의 선택과 나아가 전통한식에 대한 선택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렇듯 한식 세계화의 방법은 우리가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을 정한 후에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한식의 세계적 인지도 향상과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산업적 의도인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현지에서 전통 한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전략도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어느 경우든 외국인이 자국에서 한식을 즐기다가 나중에 한국을 방문하여 전통한식을 음미해보도록 현지화하는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선택은 해당 국가의 문화와 국민적 특성에 따라 결정해야 하지만 우리의 기본적인 음식재료를 사용하게 하는 전통적인 개념을 보유한 현지화를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 스스로 문화가 있는 전통한식의 근원을 체계화하여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전통한식을 지키고 즐기지 않는 상태에서의 한식 세계화는 이젠 의미가 없다.

이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음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같은 음식일지라도 지역적으로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발전했다. 이를 무시하고 간편성을 강조하는 획일화된 통일성보다는 살아있는 음식문화로서 점진적 발전을 거듭하도록 각국의 특성을 인정하고 차별화 및 균형화를 이루어 다면적인 음식문화를 보유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무하 한국식품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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