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판사와 사회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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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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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데빗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1979년 신임 판사들을 위한 십계명을 만들었다. 친절하라. 인내하라. 위엄을 갖추라.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라 등과 함께 ‘상식(common sense)을 존중하라’가 포함됐다. 풍부한 경험과 자기 수련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국내 한 원로 법조인은 늘 신임 판사들에게 선배 판사들의 경험을 강조하며 “시시한 선배라고 깔보지 말라”는 충고를 해줬다고 한다. 검사와 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뽑는 미국이나 10년 동안 판사보를 거치도록 하는 일본 제도는 판사의 경험이랄까 경륜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다.

▷지난해 우리나라 신임 판사 92명의 평균 연령은 28.8세였다. 2005년 29.7세였던 것이 여성 신임판사 비율이 늘면서 계속 낮아지고 있다. 신임 판사의 43%가 27세 이하였고 25세의 여성 판사도 5명이었다. 대학 때부터 사법시험 공부에 전념해 합격한 뒤 2년 동안 사법연수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남자 신임 판사들의 군 법무관 경력을 빼면 대부분 공부 말고는 이렇다 할 경험 없이 판사가 된다.

▷강기갑 의원의 국회폭력과 PD수첩 왜곡 보도에 대한 무죄 판결은 판사의 자질 및 경험 부족에 대한 논란을 키웠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젊은 판사를 양산하니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국민의 법감정이나 상식과는 거리가 먼 판결이 많이 나온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변호사나 검사 경력자의 판사 임용을 늘리고 로스쿨 출신 중에서 2년 이상 재판연구관을 거치게 한 뒤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를 건의한 것도 그래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이해가 높은 판사일수록 실수를 덜하고 독선에 빠질 소지가 적다는 점에서 사법정책자문위 건의를 적극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실시한 2년제 예비판사 제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판사들의 업무 과다를 이유로 이 제도를 중단했지만 사시 동기인 검사와의 차별대우에 대한 판사들의 불만이 더 큰 원인이었다. 사법연수원 최우수 졸업자들이 판사보다 로펌 변호사를 선호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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