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훈]재난과 군

  • 동아일보

미국은 쓰나미나 지진 같은 대규모 재난 구호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을 가리켜 ‘국제 경찰’이라고 일컫는 것은 세계의 모든 사태에 개입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미군은 전 세계를 여섯으로 나누어 담당 사령부를 만들어 놓았다. 아이티가 포함된 중남미는 남부사령부가 맡는다. 아이티에서 참혹한 지진이 발생하자 남부사령부는 칼빈슨 항공모함과 해병대원 2000여 명을 파견했다. 적십자나 소방대보다 해병대가 먼저 간 것이다. 상륙준비단을 운영하는 해병대는 어떤 조직보다도 많은 인원을 신속히 보낼 수 있다.

▷미국의 여섯 개 사령부는 관할 지역에서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세워놓는다. 한반도가 포함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태평양사령부는 5로 시작하는 계획을 만든다. 이 중 하나가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이다. 6으로 시작하는 계획을 꾸리는 남부사령부는 전쟁 발발 위험이 낮아 우발계획을 주로 만든다. 우발계획은 쓰나미나 지진 같은 대재앙, 국민 폭동으로 인한 대혼란에 대비한 군대 활용 계획이다. 전쟁이 아닌 일에 군대를 투입해 진정시키는 것을 전문용어로 MOOTW(Military Operation Other Than War·‘무트와’로 읽는다)라고 한다.

▷유난히 눈이 많은 올겨울 북한에도 폭설이 내렸다. 식량이 부족해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첩보까지 들어오고 있다. 계속된 기근과 자연재해가 북한 사회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국군이 준비해야 할 것이 우발계획을 적용하는 무트와 능력이다. 미군은 이에 대비해 우발계획 5029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군은 항공모함이나 상륙준비단 같은 초대형 신속배치 전력이 없다. 하루빨리 이러한 능력을 가진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직된 군대를 전쟁에 대비하는 조직으로만 쓸 수는 없다. 수십 년 동안 평화 시기가 계속될 수도 있다. 올겨울 폭설 때 많은 부대가 대민 지원을 위한 제설작전을 벌였다. 여름철 수해나 해양오염 사고 때도 군이 동원돼 방재활동을 한다. 1999년 결성된 상록수부대는 동티모르 급변사태를 해결하는 무트와에 참여했고, 동명부대는 현재 레바논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이라는 무트와를 하고 있다. 군의 대민(對民)활동은 국가와 군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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