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직후 처칠 씨가 영국 국민에게 수출이냐 죽음이냐, 이런 비장한 구호를 내건 적이 있습니다. 수출이냐 죽음이냐, 오늘날 바로 우리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 어떻게 하든지 10억 불 정도 올려놓고 난 뒤에, 남이 하는 흉내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출 1억 달러를 처음 달성했던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이다.
품목-시장 다변화 서둘러야
수출이냐 죽음이냐를 외친 지 45년 만에 한국이 세계 9대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사상 처음으로 톱 10에 진입했다. 1억 달러의 목표를 회상하면 얼마나 감개무량한 성과인가. 세계 시장의 점유율도 처음으로 3%를 돌파하고 무역흑자도 410억 달러로 일본을 제쳤다니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한 결과로 나타난 불황형 흑자라고 폄하해도 우리 경제에 큰 획을 긋는 실적을 올린 셈이다.
이와 같은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9대 수출대국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 같다.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은 데다 기술과 환경 등 선진국의 새로운 무역장벽은 갈수록 더 높아만 간다. 앞뒤의 높은 벽을 넘어야만 하니 수출 10억 달러의 목표를 몇백 배 초과했어도 선진국 행세의 꿈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물론 글로벌 환경만이 현안은 아니다. 새해에는 당장 수출의 외형적 성장을 뒷받침해 줄 환율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대규모 무역흑자가 원화강세와 환율인하의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수출대국으로 안정적 성장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수출의 국내 파급효과를 크게 높여야만 한다. 특히 높은 수입 의존도 때문에 부가가치가 낮고 고용효과도 작으며 중소기업 부문의 기여가 빈약한 수출구조를 시급히 고도화해야 한다.
수출품목과 지역 또한 현재보다 훨씬 더 다양해져야 한다. 현재와 같이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5대 품목이 40%가 넘고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20%에 달하는 편중된 구조로는 국민경제의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 소수 품목의 집중도는 중국(27%)이나 일본(34%)과 비교했을 때도 지나치게 높다. 또 어떤 기준으로 봐도 중국의 비중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개도국에 대한 수출 비중의 증대는 저부가가치 제품의 수출 증가를 가져와 수출구조의 고도화와는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출품목이나 대상국이 소수에 집중될수록 국내 경제의 변동성과 불안이 심화되는 현상은 너무나 당연하다. 작년에는 우연히 선진국 경제가 침체되고 중국만 선전한 결과로 우리의 수출 성과가 호전됐지만 장기적으로 수출구조는 시장규모에 비례해서 다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정책 새 패러다임 도입을
한편 대규모 무역흑자와는 달리 서비스 부문에서는 150억 달러가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금융 의료 교육 통신 등 서비스 부문은 부가가치는 물론 고용효과가 제조업의 두 배가 넘는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과 수출구조의 고도화, 경제의 선진화가 모두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규제를 획기적으로 철폐하여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을 확대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교육과 금융을 보면 관치의 손이 강해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서비스 부문의 속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이제는 수출구조의 고도화만 필요한 게 아니라 경제정책도 한 차원 높은 고도화가 필요하다. 수출대국에 버금가는 새로운 정책의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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