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폭력국회 ‘합의 정신’ 다시 배워야

  • 동아일보

작년 12월 국회 폭력사태에 대한 검찰의 판단이 엊그제 있었다. 민주당 문학진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에게 각각 벌금 300만 원과 100만 원을 구형했다. 여당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점에서, 야당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구형에 불만이다.

국회가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은 폭력사태의 발생과 처리 방식에 대한 부분이다. 양비론으로 보이겠지만 다수당인 여당은 야당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과 운영 면의 기회를 제공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야당은 적법한 절차 내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했으며,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목적을 갖고 있었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런 규범적 판단이 식상하다면 비용과 이득이라는 잣대로 판단을 해보자. 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은 저지를 위해 최선의 전략을 선택했던가? 여당은 상임위에서의 폭력사태로 인해 야당의 더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 소속 의원과 보좌관이 사법처리를 당하는 상황에서 야당은 더욱 강경한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여당으로서는 오히려 전체적인 상황의 악화를 불러온 셈이 되었다. 야당과의 협상 여지를 좁혀버린 셈이 되었다.

야당은 국민에게 한미 FTA가 부당함을 알리고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기실 법안의 문제점보다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행위가 더 크게 부각된 셈이 되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는 데 기여했을 따름이다. 야당은 강경 방침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한데 초점이 흐려져 버리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국회 전체로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국회의 위상 추락을 가져왔을 따름이다. 당시의 상황적 맥락에서 처리 강행을 택한 여당과 몸으로 막고자 했던 야당 모두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처해진 상황에서 각자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원리에 따라 해결 방안은 권위자가 존재하여 참여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국회의 경우 바로 윤리특별위원회의 활성화가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윤리특위는 15대 국회에서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처벌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번 국회에서 개선 방안을 강구하면서 국회 운영의 파행을 제재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사실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점차 사법부의 판단이 최종 결정이 되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로 국가의 중요사안이 국회가 아닌 법원에 의해 결정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대통령제하에서 여러 권력이 경쟁과 견제를 하도록 돼 있지만 현재 추세는 단지 입법부의 패배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한 점은 자정 능력이다. 운영에서 문제가 있을 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민주주의의 장점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핵심을 이루는 국회가 자정 능력이 없어서, 국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일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큰 결함이 될 수 있다. 입법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기본 기능이다. 정치가 필요한 이유는 법의 경직성을 넘어서 합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회는 합의의 기본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국회의 폭력사태는 관련 법안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폭력 발생의 기본 원인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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