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좋은 학교는 없애려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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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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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총장 앨리슨 리처드 박사는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의 명문 케임브리지대가 중점적으로 추구할 목표로 네 가지를 꼽았다. 학문적 수월성, 특히 기초연구의 중요성, 연구와 교육의 긴밀한 연계, 연구와 교육의 자유, 학문 분야 간 또는 나라와 문화권 간이나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소통과 교류였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기술이나 민주적 정치제도의 혜택을 만끽하는 것은 몇백 년 전부터 대학에서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와 교육이 이뤄져 온 덕분임을 예일대에서도 부총장을 지낸 인류학자 출신 여총장은 강조했다.

유서 깊은 대학이란 역시 개개인의 영달이나 국가경쟁력 강화의 차원을 넘어 인류와 우주 전체의 먼 앞날까지 고민하며 치열한 연마를 통해 습득한 지식과 생각을 자유롭게 교류하는 수재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이 연설이 있던 날 우리 언론은 외국어고를 폐지하려는 법안에 관한 논의로 뒤덮여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노무현 정부 때에도 서울대 폐지론은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반정부 시위도 문제지만 입시경쟁 과열의 주범이라는 것이 더 강력한 근거였다.

이제 화살은 다시 고등학교로 내려가 ‘각종학교’로 서럽게 출발했다가 불과 35년 사이에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는 우수 학교가 된 외고가 ‘마녀’로 낙인찍히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무엇이고 뛰어나게 잘하면 죄인가? 외고나 과학고는 정부가 평준화 정책으로 전통적 명문학교의 맥을 끊어 놓은 후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내세우면서 급조해낸 공교육 체계의 사생아가 아니었던가.

외고-과학고 공교육의 사생아

사교육의 범람이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법으로 뿌리 뽑힐 현상인가. 외고를 폐지해도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는다. 평준화의 틀 속에 갇혀서 형해만 남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잠재력을 개성 있게 최대한으로 발굴해 내는 질 좋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갈구와 구매력을 충족시킬 수가 없고 명문교 진학에 대한 야심을 미끼로 돈을 벌려는 사교육 세력이 들어설 여지는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사교육 업계의 노력과 현실 감각은 관료주의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 관료의 안이한 발상이나 인기영합주의에 쉽게 빠져 드는 정치인의 무지나 오만으로는 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역대 정부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왜 사교육은 세(勢)를 확장해 왔는가 생각해 보자. 높은 비용과 부작용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공교육을 통해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개별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결국은 조기유학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가 사교육의 변함없는 지지 세력으로 재생되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외고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서 사교육이 성행한다면 외고 같은 수준의 학교가 많이 생기도록 길을 터서 경쟁을 완화하는 정책이 순리이지 길을 막는 방안이 해결책이 아니다. 현 정부 초기에는 사립학교 자율화가 사교육 범람에 대한 근본적 대안임을 이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추진 초입부터 자립형 사립학교의 수를 정해 놓고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은 학교 선택의 권리도 없는 듯 학생 선발의 자율권은 성적이 우수한 학교에만 허용한다는 등 원칙상의 모순을 드러내며 사립학교의 입시학원화를 부추기더니 드디어는 더 잘못되는 방향으로 180도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나 교육이란 법령으로 폐쇄하거나 망칠 수는 있지만 법령만으로 좋은 학교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학생들이 점수 따는 기계로 훈련 받는 대신 힘들지만 신나는 학교생활을 통해 전인교육을 받는 학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학교 운영주체가 올바른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정성과 노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대원외고 이사장이 올해 인촌상을 받은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케임브리지대가 아니더라도 교육에서 자율과 자유는 발전의 기본조건이며 교육 당국은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결과를 점검할 수 있을 뿐 지금처럼 교육 방법까지 일일이 간섭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요 횡포다.

세계와 경쟁하는 ‘명문’ 키워야

외고가 설립 목적과 다르게 운용되고 민족사관학교도 이름이 무색하게도 외국 대학 입학 준비학교처럼 되어 버린 현상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우수하게 키우는 외고의 학생에게 상대평가식 내신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대학 진학에서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주다 보니 그들이 결국 국외의 명문으로 눈을 돌려 개인적 수월성을 제대로 평가 받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이제는 우리끼리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상대로 경쟁하는 세상이다. 나라 안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교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지 불리할 것이 없지 않은가.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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