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백희영이 무슨 잘못이랴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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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落馬)했을 때 어느 눈 밝은 기자는 그의 낙점(落點) 과정과 배경을 되돌아보면서 ‘제2, 제3의 천성관’을 걱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 후보자 지명을 공식 철회한 것은 7월 15일.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명을 철회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명 철회를 발표하면서도 이 고위 관계자는 “국민 생각과 대통령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처신, 평판 같은 것은 일을 잘하면 불식될 수 있지만 국회에서 거짓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의 원칙이다”라고 했다. 14억 원짜리 아파트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공직자가 그 집을 처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려 28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 했다거나, 스폰서와 함께 골프여행을 갔다거나 하는 ‘처신’은 크게 문제 삼을 게 못되지만 국회, 다시 말해 국민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

꽤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천 후보자의 ‘처신’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국회에서의 거짓말은 지명 철회의 명분으로 손색이 없었다. 해놓고 보니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 대통령의 ‘넘버1 코드’에도 딱 맞고….

천성관 사태는 그렇게 끝났는데, 눈 밝은 기자는 그 와중에 ‘처신, 평판 같은 것은 일을 잘하면 불식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또 다른 원칙이 그대로 살아남았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9·3 개각의 기저(基底)에도 그 원칙은 살아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천성관 때와 마찬가지로 특히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좀 찜찜해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백 후보자가 자질과 능력은 충분한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며 연일 불길을 잡으려 하지만 남경필 의원은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백 후보자에겐 이미 ‘부동산 투기의 달인(達人)’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하지만 백 후보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장관이 될 줄 알았으면 다운계약서를 썼겠는가? 그런 걸 숨기고 실세들을 찾아다니며 무슨 매관(買官) 운동을 벌인 흔적도 별로 없다. 유력한 후보가 청와대의 최종 검증과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백 후보자가 대신 발탁됐다는 게 정설이다. 부동산 투기야, 그렇게 밝은 눈이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달인’이 되고 싶은 것 아닌가?

문제는 인사권자인 이 대통령과 참모들의 ‘천성관 원칙’에 있지, 백 후보자에게 있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공부모임도 함께하면서 이 대통령을 지켜봤던 한나라당의 어느 원로 정치인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은 잘해. 하지만 MB(이명박)한테 모럴(도덕성)은 묻지 마.”

그 원로의 말처럼 압도적 다수의 국민은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MB의 모럴을 묻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와서 백 후보자 정도의 하자(瑕疵)를 들어 MB의 모럴을 탓하기도 어렵다. 시비한다면 그건 ‘유권자의 자가당착’이 될 수도 있다. 돈만 벌어다주면 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꼭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야 하나’라고 딴소리를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냥 바라건대, 국민이 이런 고민까지 하지 않도록 조금만 더 섬김의 자세를 가다듬어 줬으면 할 뿐이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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