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지울 수 없는 ‘인생의 흔적’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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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교수 출신 장관이 많은 교육과학기술부에는 교수 장관들의 업무능력이나 행동에 대한 일화도 많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A 장관은 처음에는 수행비서가 관용차의 문을 여닫아주자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하면 돼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장관 대접에 익숙해졌던지 6개월쯤 지나선 수행비서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릴 정도로 태도가 변했다. 그는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로 불쑥불쑥 지시해 공무원들을 난감하게 했다. B 장관은 토요일 오후에는 골프를 치러 가기 위해 점심은 거의 일식집에서 배달해온 도시락으로 차 안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교수 시절 결재 한번 해본 적이 없는 C 장관은 결재 받으러 온 공무원이 도장 찍을 곳까지 가르쳐줘야 했고, D 장관은 공무원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업무는 물론이고 용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직원들이 아예 용어해설집을 만들어다 바쳤다. 이들 장관은 하나같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국회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열리고 있는 지금, 국정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의 능력이나 자질, 도덕성을 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인사검증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언론에서 시작했다. 조각(組閣) 명단이 발표된 뒤 동아일보가 장관들에 대한 자녀 이중국적과 특례입학, 부동산 투기, 그린벨트 훼손 등의 비위를 집중 보도하면서 장관 3명과 서울시장이 임명된 지 열흘도 안 돼 중도 하차했다. 동아일보는 이 ‘문민정부 조각검증’으로 1994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언론 차원의 인사검증은 2000년 국무총리, 감사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대법관 등 국회의 동의를 요하거나 국회에서 선출하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화로 발전했다. 2003년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빅4 공직자’가 포함됐고, 2005년에는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정권교체로 여야의 공수(攻守) 위치만 바뀌었지 여야의 검증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엄격한 잣대로 들이댄 반면 민주당은 ‘흠집잡기’라며 방패막이 노릇만 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의혹 메뉴’도 거의 비슷하다. 위장전입, 논문 표절은 하도 많이 나와 이제는 무덤덤해진 듯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자녀 이중국적,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을 들어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을 부결시켰다. 노무현 정부에선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이기준 김병준 교육부총리,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낙마했다.

14일부터 진행 중인 인사청문회 대상자들도 각종 의혹을 받고 있다. 자녀 명의로 거액의 예금을 보유하고, 위장전입하고, 소득 신고를 제대로 안했다. 이런 개인 배경도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만 여야 모두 개인 검증에만 매몰된 나머지 정작 정책 검증에는 소홀한 것 같다.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무산시킨 것은 그 책무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이미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세간의 잣대가 가혹할지 모르지만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흠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스스로 결격 사유가 있다고 생각되면 이제 공직에 대한 명예욕은 접어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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