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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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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수를 끝내고도 미국에 남기 위해 회사에 연수기간 연장을 신청할 정도로 미국 생활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연수기간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가 얼마나 낙담하던지, 애처롭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예르모가 몰던 자동차도 미국산이었다. 주변에서 “미국차는 기름을 많이 먹고 나중에 되팔 때 제값 받기도 쉽지 않다”며 일본 자동차를 권했다. 하지만 기예르모는 “미국차가 좋다”며 5년 정도 된 미국산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는 차를 보여주며 “새 차처럼 깨끗하지 않으냐”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 차는 몇 달 동안이나 그를 괴롭히는 ‘애물단지’가 됐다. 구입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차가 멈춰 섰다. 딜러숍에 차를 맡기니 구입비만큼의 수리비 견적이 나왔다. 수리비를 아껴보려고 “절반 가격에 차를 고쳐주겠다”는 동네 정비소 수리공에게 차를 맡겼다.
착수금 2000달러를 받은 뒤 자신의 집으로 차를 끌고 간 이 수리공은 한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그는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만 고쳐진 차를 헐값에 되팔았다. 그 일이 있은 뒤 기예르모는 “앞으로 미국차는 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기자도 그 친구가 차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며 미국 자동차에서 마음이 점차 멀어졌다. 물론 미국차를 산다고 해서 꼭 기예르모처럼 애를 먹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차를 산다고 해서 고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일본차가 미국차보다 고장이 적고 유류비도 적게 든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를 굳이 국민 세금을 들여 구제해야 하느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빅3 위기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미국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중고 미국차 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인터넷에 일본차를 판다는 글을 올리면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차는 모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팔리지 않아 지인에게 맡기고 가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팔리는 새 차 중 절반이 미국차라고는 하지만 ‘애국심’으로 미국차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미국 국민도 자동차 빅3 업체에 등을 돌린 듯하다. 빅3 구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6일 NBC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에 나와 “빅3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당 방안대로) 250억 달러를 지원해봐야 3개월, 6개월 뒤 또다시 250억 달러를 달라고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의 토론 코너에 올라온 글을 보면 10개 중 9개는 ‘빅3에 한 푼도 줘서는 안 된다’는 격앙된 내용이다.
이처럼 여론이 빅3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이 미국 자동차업체가 자초한 일이라는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화하는 소비자 기호를 무시하고 혁신에 게을리 했던 무능한 경영진, 잇속을 챙기는 데 급급했던 노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경제에 중요한 기업이라고 해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경영자와 노조를 편드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한국 기업도 배워야 할 교훈이다.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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