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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25일 2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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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없는 평등한 천국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케랄라 모델’의 현주소다. 케랄라는 1975년 유엔이 ‘교육과 의료에서 놀라운 발전’이라고 극찬했을 만큼 불평등한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적 평등과 삶의 질 향상을 이뤄 낸 모델로 여겨져 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대개 비슷한 것 같다. 우리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비전은 물론 이를 대못질로 현실화하고 있는 대통령의 정책들도 세계 어디에선가는 거론됐고, 시도된 것들이다.
그게 이왕이면 성공률이 높은 공약이고 정책이면 참 좋을 텐데 정치인의 고매한 눈엔 세계의 현실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이들에게 평등과 분배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케랄라 모델’은 지금 중동에 취업한 아빠들이 보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케랄라에선 실업률이 수십 년째 20%를 넘어 취업자 여섯 명 중 한 명은 해외에서 일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구했던 라마크리시난이라는 남자는 15년 전 카타르에서 운전사로 취직해 번 돈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며 지금껏 떨어져 산다. 반(反)기업 환경과 과도한 규제 때문에 좌파 지방정부가 만들어 준 ‘일자리 나누기’ 말고는 일거리가 없어서다. 전 세계 좌파가 공격해 온 시장 주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세계화가 없었다면 케랄라 주민들은 꼼짝없이 ‘차별 없는 낙오자’가 될 뻔했다.
물론 진작 자본주의를 택했던 우리 경제를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에서 헤맨 인도와 나란히 놓을 순 없을 거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아시아 신흥국가를 중심으로 세계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한 게 지난해 이맘때였다.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힘쓴 홍콩과 싱가포르는 2006년 6.9%와 7.9%의 경제성장률을 올렸다. ‘유럽의 환자’였던 독일조차 임금 인상과 복지를 억제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개혁 덕에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거듭났다. 우리는 이 성공률 높은 노선이 약육강식 강자지배의 악덕이라며 역주행한 참여정부를 만난 탓에 그 황금기를 허무하게 놓쳐 버렸다.
보통 사람들도 경제, 경제 하는 건 이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여서가 아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야 월급도 좀 오르고, 애들 공부도 시키고, 노후를 위해 돈도 좀 모을 수 있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다. 자신은 공부를 안 하고 못했더라도 자식만은 공부 잘해서 좋은 데 취직하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학교에선 공부 잘 가르치도록, 취직할 만한 좋은 데도 많이 나오도록 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아무리 교육의 형평성과 삶의 질을 높여 봤자 일자리 내쫓는 정부 아래선 말짱 도루묵임을 ‘케랄라 모델’이 보여 준다. 그 지방의 자살률이 인도 평균의 네 배다.
선택할 기회와 자유 뺏겨서야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이 현 대통령처럼 “자유와 평등을 얘기할 때는 평등이 근본”이라고 믿는다면 할 말은 없다. 단 그 시대 정신은 자신에게도 정확히 적용돼야 한다.
내 자식은 평등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는데 자식이 부모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외국어고 보냈다는 사람은 고교 평준화를 강요할 자격이 없다. 내 자식은 쌀밥 먹이면서 남의 자식에겐 건강에 좋으니 보리밥만 먹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선택할 기회도, 자유도 안 주려는 대선 주자는 케랄라로 가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개성공단이거나.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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