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두]에너지전쟁 우리는 뭐 하나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베트남에서 한국의 첫 해외 천연가스전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11-2 광구 내 롱도이 가스전에서는 앞으로 23년간 하루 평균 2900t의 천연가스와 4200배럴의 초경질 원유를 생산해 총 5억 달러의 순이익을 안겨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이미 동해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해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베트남 15-1 광구 흑사자 해상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추가 생산 및 탐사 계획이 이어지고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대형 가스전 개발에 성공했다.

에너지안보가 동맹 재편 불러

벅찬 가슴으로 축하함과 동시에 냉정하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번 가스전이 생산에 이르기까지 14년이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자주 에너지 개발률이 4%대에 불과하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롱도이 가스전은 1992년의 탐사 계약 이후 6년 만인 1998년에 유전을 발견하고 14년 만에 결실을 봤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16일 중국과 베트남이 통킹 만 유전 개발에 합의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64년 통킹 만 사건으로 베트남전쟁이 촉발된 곳에서 두 나라가 손을 잡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지구촌의 많은 국가가 경제 중심적 국가 전략으로 돌아섰음을 보여 준다.

에너지 안보는 그 변화의 핵심에 있다. 21세기 들어 에너지 문제는 동맹 재편을 촉발하는 요인이 됐고 군사 협력과 통상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유가 시대 석유시장을 석권했던 오일 기업은 뒤로 밀려나고 국영기업이 시장을 흔들게 됐다. 세계 최대 정유회사라는 엑손모빌이 보유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12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너지시장은 시장의 논리보다 국가 안보에 기반한 주요 국가의 전략이 충돌하는 전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깃발 아래 이뤄진 미국의 최근 대외정책은 에너지 안보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복합적 목적이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러시아는 에너지 초강대국 실현이라는 국가 목표를 세우고 실추된 위상을 회복 중이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에 대한 동맹 강화 정책은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으로 보인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에너지 우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중국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중국-러시아의 지원하에 반미 노선에서 생기는 압력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 에너지 우산이 핵우산의 역할을 대체하며 동맹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문제는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대처가 늦어질수록 진입 비용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카스피 해와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국가의 치열한 진출 경쟁으로 몸값이 급속하게 올라가고 있다. 웬만한 규모의 지원으로는 성과를 올리기 힘들어졌다. 한국은 2004년 9월 카자흐스탄을 필두로 2년 만에 17개국에 대한 자원 정상 외교를 벌이고 에너지 기본법 제정과 국가에너지위원회 가동 등 숨 가쁜 노력을 해 왔지만 후발 주자가 따라잡아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대처 늦으면 진입장벽 더 높아져

에너지 안보는 국가 총력전이 돼야 한다. 미얀마 해상유전 개발의 경우 미얀마의 중국 일변도 정책으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목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군사 안보는 물론 국가 차원의 포괄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입된 시간과 노력이 반감될 수 있다.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인식이나 ‘우리 밥그릇은 뺏길 수 없다’는 부처 간 이기주의가 스며들면 국가경쟁력 약화라는 쓰디쓴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오늘도 세계 곳곳의 자원 개발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한국의 에너지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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