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유누스 “빈자의 은행 들어서면 北도 변화할 것”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2006년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유누스 총재는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박영대  기자
2006년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유누스 총재는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박영대 기자
“한국은 ‘빈곤 박물관’을 짓는 첫 번째 나라가 되어보세요. 언젠가는 박물관에서나 빈곤을 접하는 날이 올 테니까요.”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무하마드 유누스(66) 그라민은행 총재. ‘빈민들의 은행가’로 통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가난을 물리치려는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1시간의 인터뷰 내내 그는 구상 중인 프로젝트며 빈곤 퇴치 사업들을 설명하느라 말을 그칠 틈이 없었다.

2006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도 선정된 유누스 총재는 19일 시상식 참석차 가족과 함께 방한했다.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의 눈매와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북한에서 로비스트 하고파”=인터뷰 초반의 화제는 북한 문제에 집중됐다. 18일 입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북핵 문제의 해법은 빈곤 퇴치”라며 방북 기회가 생기면 가난을 타파할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비스트가 돼 북한의 정책 담당자들을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라민은행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것, 그 과정에서 부닥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이야기해 주며 동참을 권하고 싶어요. 비참했던 방글라데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직접 와서 보라고 초청도 할 겁니다.”

담보가 없는 자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 주는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방식은 빈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끌어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끌어낸 성공 모델이 북한에서도 가능할까.

“그럼요. 그라민은행의 운영 방식은 대다수 선진국 외에 중동과 라틴아메리카, 코소보, 보스니아에서도 벤치마킹되고 있어요. 북한도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다르다고 사람까지 달라지지는 않아요. 문제는 그들이 발전의 기회를 받아들이느냐죠.”

이 세계의 빈곤이 100% 없어지는 날이 언제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뜸 “2년 정도면 어떨까”라고 되물었다. 기자의 표정에 ‘도저히 불가능’이라고 쓰였던지 그는 곧바로 웃으며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은 빈곤 퇴치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릴 최고의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2, 3세대 전까지 혹독한 가난을 직접 경험하고도 놀라운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잖아요. ‘빈곤 박물관’을 짓고 최후의 빈곤 탈출자가 개관식에 참석해 ‘가난아 안녕’을 외치는 행사를 진행해 보면 어떨까요. 한국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北담당자 설득… 방글라데시 변화 보여주고파

한국, 빈곤박물관 짓는 첫번째 국가 되어보라

노벨-서울평화상 상금 어린이 급식에 쓸 것

▽“상금으로 돈 못 버는 사업 할 터”=그라민은행은 특이하게도 대출자 중 여성의 비율이 96%나 된다. 여성의 경제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유누스 총재는 이를 가장 어려웠던 경험 중의 하나로 꼽았다.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해도 여성들이 모두 ‘노(no), 노 노 노’ 손사래를 치고 도망갔어요. 사업도 돈도 모르니까 남편과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이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면서 1982년 남녀 대출 비율을 같게 만들기까지 6년이나 걸렸어요. 정말 힘든 길이었습니다.”

두 개의 큰 상으로 받은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익은 나지 않지만 좋은 일을 하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요구르트와 우유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되는 ‘그라민-다농 푸드 컴퍼니’가 대표적인 예다. 일체의 수익이나 배당금이 없다는 데 회사 관계자들이 이미 합의했다.

“사람은 돈 버는 로봇이 아닙니다. 좋을 일을 하는 비즈니스가 많아요. 잘못된 시스템과 정책, 인식 때문에 만들어져 약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두가 힘을 모아 함께해야 할 일입니다.”

줄곧 웃는 듯 보이던 그의 선한 눈매에 힘이 실려 있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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