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사학법 개정 이후

  • 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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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방에서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사학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며 사학법 개정은 이를 위한 첫 단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개정안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학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넘겨주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학 비리에 대한 시각도 사뭇 다르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고질적인 사학 비리를 없애려면 사학법 개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사학 비리 척결은 현행 법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도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손들어 주지 않고 있는 상황. 사학법과 관련한 상반된 의견을 들어 본다.》

●독소조항 철폐투쟁 계속

아동 학습법 중에 ‘숨은그림찾기’란 것이 있다.

가령 아름다운 전원 속에 어린아이들이 마냥 즐겁게 뛰노는 그림이 있다고 하자. 일견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그 속에 아이들을 노리는 독사가 한 마리 숨어 있다면 이 그림의 주제는 평화가 아니다. ‘숨은그림찾기’ 놀이에서는 이 숨어 있는 독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강행 처리된 사학법에는 ‘숨어 있는 그림’이 있다.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숨어 있는 그림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왜 대다수 사학들이 이번에 개정된 사학법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학의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 속에 그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개정 사학법에 숨어 있는 그림 하나만 살펴보자. 이른바 ‘개방형 이사제’다. 이 제도는 법인 이사의 4분의 1 이상을 외부에서 영입하도록 규정했다. 이 외부 인사를 학교운영위원회(대학은 평의원회)에서 배수로 추천해 법인이사회에 요청하면 이사회는 그중에서 일정 수를 선임해야만 한다. 따라서 법인의 이사 선임권은 타의에 의해 상당 부분 침해를 받게 된다. 일반 기업의 사외이사제는 어디까지나 법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기업에 필요한 이사를 선임하는 제도이다. 결코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학교법인의 경우에만 외부 추천 인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는 분명 재산권 침해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는 외국 학교도 개방형 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했다. 외국의 경우는 기업의 사외이사제처럼 학교 법인이사회가 고유 권한을 가지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있다. 이 같은 성격이라면 우리의 사학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개정 사학법에는 명분과 다른 실체가 있다. 아울러 사학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 이 법은 절대 다수의 건전 사학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저마다 고유한 건학이념을 가지고 있다. 외부 이사들이 건학이념을 무시하면 학교는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이 공교육의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오게 되면 이사회의 지배구조가 바뀌게 된다. 대학의 경우에 피교육자인 학생마저 학교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어떻게 정상적인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사학의 비리는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제재가 가능하다. 숨은 그림이 없다면 굳이 문제점과 위헌의 소지가 있는 사학법을 무리하게 강행할 필요가 무엇인가. 대통령께서는 지체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사학법 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언제든지 발전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독소조항을 담은 악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인 만큼 정파를 초월하여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교육당국과 사학계, 종교계 등이 차분히 중지를 모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자. 최근 언론을 뒤덮고 있는 ‘줄기세포’ 사건 때문에 사학악법이 ‘묻혀 버리는 그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우리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간절한 건의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순교의 정신으로 끝까지 거룩한 투쟁을 할 것이다.

김성영 성결대 총장·신학대학총장협의회장

●찬반양측 신뢰구축 시급

교육계에서 시작된 사학법 개정 파문이 정치권을 넘어 이제는 종교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 확보와 ‘투명성’ 보장이라는 다소 상반된 가치의 다툼이 문제의 본질이다. 많은 학부모는 사학법 개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관학(官學)이 하지 못하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사학이 담당하며,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학교가 운영되기를 국민들이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학법 개정은 큰 틀에서 볼 때, 교육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를 담은 시대의 요청이다. 사학의 ‘점진적’ 변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법을 개정하자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개정된 법안에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최종 결정권은 학교이사회에 두면서도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예산 및 결산 전심(前審)과 감사 1인 선임, 외부 인사의 이사 추천, 친족이사 비율 제한 및 비리 인사의 엄격한 제재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규제한 부분이 포함되었고,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사항도 누락되었기 때문에 ‘절반만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학은 자주, 자율, 자립의 ‘사적(私的) 자치’가 기본원리여야 한다. 그러나 학교장의 임기제한(4년 중임)과 이사장 직계의 학교장 취임 금지는 사학의 자율성 침해와 함께 오히려 관치(官治)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 학교장 임기는 그 학교의 필요와 그 학교장의 능력에 따라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족벌 사학’은 늘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기업에서도 ‘가족 경영’으로 높은 효율성과 훌륭한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직계라고 무조건 배제해서는 안 되며, 학교의 장(長)에 대한 자격 판단 기준은 ‘혈통’이 아니라 학교를 잘 경영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이제는 사학법을 둘러싼 소모적인 대립과 다툼을 넘어서 사학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제대로 된 방안을 함께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찬반 양측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찬성 측은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투명한 경영을 바라는 것이지 결코 학교 경영권을 장악할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사학도 학교 혁신과 윤리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와 대안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일부 사학의 ‘신입생 모집 중지’와 ‘학교 폐쇄’ 위협은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자해 행위다. 이처럼 무책임한 주장은 거둠으로써,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육 발전에 기여해 온 의연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 쟁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 여야가 함께 대체입법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치권과 교육계, 종교계 및 시민사회는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하자. 학운위의 ‘이사추천권’에 비례하여 이사회에는 ‘재추천요구권’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방법일 것이다. 아울러 일정 비율의 학생선발권 부여와 학운위 기능의 합리적 조정, 사학의 자율성 및 투명성 평가 기구 설치도 함께 제안한다.

김장중 인간교육실현학부모 연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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