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아침에]김용택/부끄럽다, 아이들아!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47분


학교 앞이나 뒤, 그리고 양옆이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 학교는 지금 온통 푸른색이다. 싱그러운 초록 속에 아이들 몇 명이 뛰어놀고 있다. 지금부터 30여년 전만 해도 아침이면 학교가 떠나갈 것처럼 아이들의 소리가 산천을 울렸었는데, 전교생 40명 모두가 운동장에 나와서 공을 차도 운동장은 겁나게 남는다. 운동장이 너무 커 보이고, 학교가 너무 커 보인다. 크고 넓은 운동장이 그래서 가난하고 초라해 보인다. 아이들은 다 어디 갔는가.

▼아이들은 내 인생의 스승▼

나는 정식으로 선생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지금부터 33년 전 어느 날 정말이지 너무나도 우연히 교원양성소 시험에 응시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선생이 되었다. 그것도 4개월 만에 말이다. 지난해 교사 수급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했다. 세상에, 33년 전의 문제가 오늘에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었고, 현실이다.

아무튼 나는 4개월간의 강습을 마치고 일선 학교에 배치되었다. 솔직히 나는 선생이 싫었다. 내 새파란 청춘이 산골 학교의 답답한 선생을 용납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답답한 선생 생활을 탈출할 수 있는 뾰쪽한 수가 없는 나는 그냥 어영부영 학교 생활을 했다.

그렇게 5학년을 가르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도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한명 한명 독립된 ‘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달빛을 받은 강물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것이다. 그랬다.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한명이 아니라 아이들은 한사람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지러울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선생 생활 8년 만에 아이들을, 사람을 본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들의 교육 현실은 말이 아니었다. 모든 교육제도와 여건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교육을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과 신나는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는 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학년 초 처음 만난 아이들이 내게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다가오는 그 사랑의 줄다리기가 나는 좋았다. 처음 내 주위 저 쪽에서 나를 향해 빙빙 돌던 아이들이, 몇 달이 지나면 내 손을 잡고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들의 따뜻한 체온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나는 지금도 질리지 않고 바라본다. 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알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스승이 되어 갔다. 거짓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을 나는 좋아했다. 하루하루 학교 생활이 가장 행복한 나의 현실이 되어 주었다. 집에 가면서, ‘등교’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즐겁고 행복했으며, 내 잘못으로 괴로워했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내 진심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내 머리도 이제 희끗거린다. 나는 내가 처음 선생으로 일생을 살아가고자 했을 때, 이렇게 다짐했다. ‘그래, 나는 검은 머리로 이 아이들 곁에 있게 되었다. 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이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일생을 사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리라.’ 그랬다. 나는 그렇게 지금도 아이들 곁에 있다.

▼아이들 미래 위해 걱정하자▼

나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지금 22년째 근무를 시작했다. 내 반은 일곱 명이다. 내가 옛날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자식을 낳았다. 그 아이들의 아들딸들이 내 반 학생들이 되어 내 앞에 저렇게 앉아 나를 까만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스승의 날’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라와 온 국민이 나서서 하루만이라도 스승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잘한 일보다 낯뜨거운 일들이 훨씬 더 많다. 난 아이들에게 그동안 나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머리 숙여 빌고 싶다.

우리 어른들이 언제 정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한 적이 있었던가. 부끄럽다 아이들아.

김용택 시인·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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