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이슬람땅서 '노동사목' 박원옥 엘리자베스 수녀

  • 입력 2001년 5월 25일 19시 06분


“한국 음식과 한국말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인류가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 보람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중세 도읍지 페스에서 활동하는 박원옥 엘리자베스 수녀(48)는 ‘예수회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이하 우애회)’ 소속으로 15년째 이슬람권 국가에서 지내고 있다. 우애회는 예수가 나사렛에서 했던 노동과 기도 생활을 본받자는 취지에서 1939년 알제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수도회이다.

박 수녀는 70년대 초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간호사로 독일의 한 가톨릭계 병원에서 근무하던 일이 계기가 돼 이슬람권에서 노동 사목(司牧)의 길을 걷게 됐다.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 이란 등지의 노동자들이 병원에 많았습니다. 그들이 숨질 때 본인은 물론 가족이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과연 종교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귀국해 수녀회에 들어갔다. 수녀로 종신서원을 하기 전 3년간 목걸이공장과 안경공장 직공으로 일했으며 파출부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현재 페스에서는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봉제공장의 봉제사로 일하고 있다. 이 곳에도 성당이 있지만 신자는 외국인들이다. 이 곳에서의 선교활동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여건 때문에 함께 부대끼며 서로 이해하는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인터뷰 도중에도 옆집의 중년 여인이 찾아와 ‘아들 때문에 속상해 못살겠다’며 조언을 구했다.

수녀로서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는 청혼이라고 했다. 수녀에게 웬 청혼일까. 늘 평복 차림으로 지내기에 사정을 잘 모르는 이웃마을의 40, 50대 노총각들이 청혼해오곤 한다는 것.

“함께 지내는 나이드신 수녀를 제 어머니로 알고 ‘당신 딸과 혼인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올 때는 웃음이 나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박 수녀는 봉제공장을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페스〓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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