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여성화재진압요원, 인천계양소방서 황경희씨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39분


《‘리베라 메’ ‘사이렌’ 등 화재현장을 다룬 최신작 한국영화를소개하는 곳에는 흔히 ‘불과 싸우는 사나이들의 세계’라는 수사가 등장한다. 여성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금녀의 영역’이었던 화재현장에서 넘실대는 불길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여성 소방대원이 국내에서 처음 등장했다. 황경희씨(25·인천계양소방서 작전파출소 소방사). 이소라의 노래를 좋아하고 헬스로 몸을 다지고 동생들과 함께 ‘DDR 노래방’에서 열정적인 춤을 추는 신세대 처녀다.》

그녀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탄생한 여성 화재 진압요원 4명 중 한사람이다.

경북 영주시 영주여고를 졸업한 뒤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7월 인천소방본부의 소방대원 임용시험에 응시했다.

▼ 공무원 되려다 우연히 도전 ▼

“진로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우연히 소방대원 모집공고가 났기에 응시했죠.”

경쟁률이 7 대 1인 이 시험에 합격한 그녀와 같은 또래의 여성 3명은 4주간의 훈련을 거쳐 여자로서는 국내 최초의 화재 진압요원이 됐고 지난달 16일 모두 일선소방파출소에 배치됐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24일 오후 9시26분. 소방파출소에서 TV를 보던 그녀는 비상벨이 울리자마자 소방차로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탑승과 동시에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수화 방수복 공기호흡기 방수모 방수장갑 등 화재진압복으로 완전 무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 공기호흡기만 8㎏이나 되고 방수복과 방화복 무게까지 합치면 더욱 힘이 들지만 그녀는 화재 현장인 계양구 동양동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소방호스를 둘러메고 겁도 없이 사나운 불길로 접근해 물을 뿜어댔다.

아직 초보라 걱정하는 선배들의 만류로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진화 지원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1시간10분 동안 화마와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불길이 잡혔다.

▼ 동료들 "침착한 여전사" 칭찬 ▼

동네 주민들은 “어! 여자 소방관이네”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다 박수를 보냈지만 이미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녀는 이곳에 배치된 뒤 20회를 웃도는 출동경력을 쌓으며 선배들로부터 ‘침착하고 일 잘하는 여전사’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루에 두 세번 현장에 출동하느라 파김치가 되기도 하지만 불길을 잡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용기와 힘이 솟구칩니다.”

황씨는 소방관이 된 뒤로 ‘불은 여자라고 절대 봐주지 않는다’는 선배들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동하는 날이 대부분이고 한군데 불을 끄자마자 다른 곳으로 곧바로 이동하는 일도 잦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격일제 근무로 평상시에는 소방법규를 익히고 소방점검도 나가는 등 언제나 분주하다.

황씨는 “사이렌을 울리고 화재현장으로 향하는 소방차를 추월하는 승용차가 있는가 하면 절대 비켜주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아 기가 막힐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며 시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