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투표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32분


미국 플로리다주의 일부 선거구에서는 기계적으로 투표용지에 구멍을 뚫어 카드판독기로 지지후보를 확인하는 펀치카드식 투표용지를 손으로 일일이 재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계에 의한 재검표는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드판독기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보조개표’(구멍 눌린 자국만 있는 표)와 ‘배부른표’(구멍은 약간 뚫렸으나 모서리가 완전히 붙어 있는 표)가 상당수 있어 그 표의 유무효 문제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우리도 기표용구(붓두껍)에 의한 투표의 유무효 문제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선관위측은 유권자의 의사를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경우에는 그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기표란에 기표의 흔적이 3분의 1만 되어 있어도, 후보의 이름 위나 기타 기표란이 아닌 곳에 기표가 되어 있어도 그 후보란이라면 그를 지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투개표과정의 불편과 부작용 때문에 전자투표방식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미국의 일부지역에서는 유권자의 편의를 위해 모니터 화면을 직접 눌러 투표하는 터치스크린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집에서 컴퓨터 자판 하나만 두드리면 자신의 의사가 표로 반영되는, 그것도 지지의 강도까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자투표도 현재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지지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기때문에 결과적으로 비밀투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민주당이 지난 8월말 전당대회에서 8700여명의 대의원들이 전자투표로 최고위원들을 선출했다. 지난 2월에는 국회가 선거법개정안을 전자투표로 처리했다. 선관위 역시 전국적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예산이나 개표에 대한 신뢰문제 때문에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며칠 전 의료계가 실시한 약사법 개정과 관련된 투표에서도 전화나 방문을 통한 투표가 이뤄졌다고 해서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가 어디에서나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시대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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