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제언]정문술/벤처탈선 막을 제도있어야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9시 05분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은 요즘 화가 나 있다. 잠도 설치기 일쑤다. 한국경제의 희망으로 믿었던 벤처기업들이 손가락질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사장은 “목숨을 걸고 일에만 매달려야 진정한 벤처기업인”이라 강조했다. ‘무늬만 벤처’인 사람들에게는 주저 없이 매를 들었다. 20, 30대의 젊은 벤처기업가보다 도전과 모험정신에서 앞서 있는 노장(老將)에게 벤처 위기의 해법을 물었다》

―정현준 사건에서 드러났듯 벤처업계의 혼탁상이 심각하다. 왜 그런지.

“진짜 벤처기업인은 순수하다. 온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금융 브로커들이 일부 벤처기업들을 오염시켰다.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코스닥 증권시장을 키우다 보니 사채자금이 무더기로 들어왔고 돈놀이가 판을 친 것이다.”

―벤처기업에도 잘못이 있다. 상당수 업체는 기술개발보다 돈놀이에 빠진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나 말썽꾸러기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곤충학자가 개미들을 관찰해보니 2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80%는 게으름을 피웠다. 다시 열심히 일하는 20%만 따로 모았더니 이번에도 일하는 20%와 노는 80%로 나뉘더라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알곡과 쭉정이가 있다.”

―실제로 어떤 유혹을 받았나.

“96년 미래산업을 상장할 때다. 누가 찾아와서 ‘1만주를 주면 투신사의 펀드매니저를 동원해 주가를 올려주겠다’고 제의하더라. IMF 때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 지분도 높이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유혹을 끝까지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실제 많은 벤처들이 이런 꾐에 빠졌다. 벤처인들이 심리적으로 나약했던 점도 있지만 주변의 사회분위기도 책임이 크다.”

―진정한 벤처인은 누구인가.

“벤처인이라면 100만분의 1의 가능성을 보고 보람과 성취를 위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남이 걷지 않은 길을 달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용궁’까지 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재벌까지 벤처 투자에 나서고 있는데 문제점은….

“사회 일각에서는 재벌 2세들의 벤처투자를 우려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물려받은 자산을 자동차 등에 투자하는 것보다 벤처에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부의 변칙상속 문제는 그 문제에 국한해서 봐야 한다. 재벌 2세들이 벤처에 투자할 경우 지분을 100%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으면 5∼10%, 많아야 50%선이다. 벤처 2세들이 투자에 성공해 창출하는 부는 결국 벤처 창업자들에게 반 이상이 귀속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의 배분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150여개 벤처기업을 나스닥에 상장한 것은 기술력 덕분이긴 하지만 기성 기업인들이 이끌어준 점도 있다고 본다.”

―왜 벤처기업이 ‘희망’인가.

“이유는 네 가지이다. 우선 대기업 붕괴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은 벤처밖에 없다. 과거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그룹경영은 끝났다. 벤처는 부가가치 창출과 고용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다. 둘째, 세계경제의 조류가 벤처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기업경영의 속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의사결정이 느린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대기업은 적응이 어렵다. 셋째, 한국인은 기술개발 속도와 비용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도전정신은 벤처 육성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부작용을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70, 80년대 무역입국을 표방했을 때도 무역사기꾼들이 들끓었다. 지금 벤처를 가장한 벤처사기꾼들이 일부 있는데 이 때문에 벤처입국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는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없다. 오늘의 실리콘밸리가 가능했던 것은 실패에서 성공의 노하우를 배웠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한다. 사업 실패를 곧 사회적 매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벤처투자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대중에 미리 알려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일부계층은 벤처에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블루스카이법’이 있다. 이런 보호장치를 우리 정부도 고려해야 한다. 또 불법 탈법적인 머니게임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

정문술 사장은 올해초 벤처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친목모임인 ‘벤처리더스클럽’의 회장을 맡았다가 불과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회장을 하다보니 자꾸만 권력욕이 생기는 것 같아서…”라는 게 이유였다. 그는 지금 ‘초심’인 미래산업을 키우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

<정리〓천광암기자>iam@donga.com

▼정문술사장 약력▼

△1938년 출생

△1964년 원광대 종교철학과 졸업

△1962∼1980년 중앙정보부 근무

△1983년 이후 미래산업 대표

△1999∼2000년5월 라이코스코리아 대표

△2000년 6월 이후 라이코스코리아 회장

△저서:왜 벌써 절망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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