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쟁점토론]경제팀 또 새로 짜야하나

  • 입력 2000년 10월 2일 18시 44분


9월 25일자 오피니언페이지(A7면)에 실린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시론과 이에 대한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의 반박(본보 9월 30일자 A1·3면 보도)을 계기로 촉발된 현 경제팀의 경제정책 운용 방향 및 경제팀 인선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각각 경제학계와 경제관료사회의 대표적인 두 사람이 시작한 논쟁 포인트들에 대해서는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교수의 주장을 지지하며 현 경제팀을 강력히 비판하는 김기원(金基元)방송통신대 교수와 상대적으로 진장관의 입장을 옹호하는 민병균(閔丙均)자유기업원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찬성/"개혁역행조치 내놔"

반도체가격 하락, 유가급등, 대우차 매각 실패로 우리 경제는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사실 여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요인과 부실한 재벌 금융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위기극복 능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과연 무엇 때문에 개각을 했는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되는 판국인 것이다.

새 경제팀이 들어선 지 두달도 채 안되고, 또 이들은 부지런히 언론에도 등장해서 뭔가 열심히 하는 듯한데 더 두고 보자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엔 큰마음 먹고 40조원의 공적자금도 추가조성해 2단계 구조조정에 착수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경제팀보다 더 나은 팀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회의도 든다. 그러나 이들이 취한 일련의 행태를 보건대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이들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자. 이들이 내세우는 바는 오랜 관료경험이다. 그런데 긴 세월 동안 승승장구해 온 탄복할 만한 처세술은 갖고 있겠지만, 뭔가 개혁적인 사업을 벌인 적은 없는 듯싶다. 멀리는 그만두고라도 바로 직전 관직에서의 성적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또 이들이 들어설 당시 이른바 동교동계를 포함한 정치권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나 재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인물을 택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청와대측 발언도 께름칙하다. 개각으로 새로 등장한 각료들의 면면에 재계가 안심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부가 늘 재계와 싸움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아니 정부는 재계가 편안하게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의 곪은 환부를 방치해서는 안되며 치료를 거부하는 재계의 엄살에 넘어가서도 곤란하다. 우리 경제를 안정적 선진구조로 환골탈태시켜야 비로소 국민과 재계가 진정으로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혁성이란 이런 과정의 고통과 반발을 뚫고 나가는 비전과 결단력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현 경제팀은 구성되자마자 개혁을 힘있게 추진하기보다는 땜질처방과 개혁역행적 조치들을 내놓았다. 즉 현대의 부실계열사와 총수일가 퇴진 문제를 얼렁뚱땅 해치운 것이다. 또 생명보험사 상장과 관련해 계약자 권익을 되찾아주는 기존의 정부안을 무시하고 총수 일가만의 이익을 위한 재계안에 솔깃해하는 발언들을 슬쩍슬쩍 흘렸다.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 도입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대우차 매각협상의 전개과정에서 갈팡질팡의 극치를 달림으로써 위기대처 능력마저 의심케 만들었다. 포드의 제안가격을 흘리는 등 국제거래의 ABC도 몰랐던 책임은 과거 금융감독원장에게 돌리기로 하자. 그런데 현 경제팀도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자 선인수 후정산이니, 10월 20일까지 결말짓겠다느니 하는 되지도 않을 발언들을 그냥 뱉어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출범 때 자랑했던 경제팀 내부의 팀워크도 별로였다. 이전 팀처럼 회의석상에서 고성이 오가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우차 재입찰에 현대가 참가해도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또 2단계 구조조정에서 4대그룹에 대해 부채의 출자전환을 허용하느니 못하느니 하면서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내부조율은 거치지 않고 그저 언론플레이하기에 바쁜 것 같다.

개혁은 대통령과 장관들의 언론플레이가 아니다.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로 국민이 개혁식상증과 개혁피로증에 걸려 있다. 어지러운 말잔치보다 명확한 비전을 갖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학계인사의 발언에 발끈하는 식으로 나올 게 아니라 개혁적 행동으로 국민이 신뢰하게끔 해야 한다. IMF사태가 끝난 듯 싶은데 다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대지진 뒤의 작은 여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맹장염 우습게 보다가 복막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또 개혁의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 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현 경제팀은 거듭나야 한다. 만약에 그럴 자신이 없으면 조속히 물러나야 한다. 장관직은 화려한 경력 쌓기용이 아니다.

김기원(방송대 교수·경제학)

▼반대/"구조조정 큰틀 옳아"

정운찬(鄭雲燦)교수는 9월 25일자 동아일보 시론을 통해 정부의 구조조정 관련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김종인(金鍾仁)전 경제수석은 9월 29일 민주당의 열린 정치포럼 초청강연에서 타협 없는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이런 정책 비판은 당연하고도 시의적절한 바가 있다. 그것은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의 난맥상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 누가 과연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인가 하고 물어볼 때 그것은 과도한 주문이 아닌가 한다. 맞는 말이지만 공격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큰 그림을 그려보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공적자금 50조원을 추가 투입해 ‘총량제’로 끌고 가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구조조정이 미진하거나 잘못된 것은 그동안 ‘총량’ 개념 없이 시작한 데 원인이 있었다. 원래 구조조정 방식은 시장해법인 워크아웃과 관치해법인 관치금융의 합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실기업에 대한 청산가치와 회생가치를 비교해 회생가치가 큰 기업을 살리려고 할 때 채권은행의 지원과 판단이 필요한데 그 은행이 국영은행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관치해법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준’뿐만 아니라 ‘총량’이 제약돼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원리를 모르고 우왕좌왕한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총량을 누구에게 주느냐가 문제다.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처지의 기업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구조조정은 학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닌 것이다. 그 상황에서 평가 기준이 보일 것이며 정의와 국가가 보이겠는가. 그래서 이 과제는 국가를 생각하는 관료들의 작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다소의 부정과 부패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정치권을 본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일처리인 것이고,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수준이 곧 구조조정 내용을 결정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구조조정이 되기나 했으면 하고 바라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늘어놓고 볼 필요가 있다.

우선 1997년 환란(換亂) 이후 우리나라의 현재 위상은 무엇인가. 우선 국가신인도가 BBB등급이다. 겨우 BBB마이너스(―)를 면한 것이다. BBB마이너스라면 투자부적격국가다. 이렇듯 우리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뢰도는 아직도 바닥을 겨우 면한 상황이다.

둘째, 경제를 개방할 때에 환율을 고정시킴으로써 그 운용이 미숙했고 금융이 제 기능을 못해 환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환란이 끝나려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다해야 하고 그것이 시장경제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은 바람직한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셋째, 은행과 기업이 무수히 국영화되면서 이제는 관치가 아닌 국치(國治)가 돼가고 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교육제도, 의약분업, 모두가 시민의 선택권을 차단하고 정부라는 대형(大兄), 즉 빅브러더(big brother)가 국정을 장악해 가는 국가사회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구조조정에다, 시장경제에다, 또 국가사회주의의 비효율을 걱정해야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문제가 산적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해법도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때이다.

지금 우리가 빚잔치하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걱정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타협 없는 구조조정이 구호에만 그칠 수 있는 것이라면 총량제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시장경제와 국가사회주의 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런 일이 장관자리 하나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교수의 걱정을 질타할 일도 더더욱 아니다. 문제를 해결해줄 정책대안만 필요할 뿐이다.

민병균(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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