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송두율교수 왜 못오나?]국정원 준법서약서가 발목

  • 입력 2000년 7월 4일 19시 14분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宋斗律)교수의 귀국이 번번이 좌절된 주된 원인은 국정원의 ‘준법서약서’제출 요구 때문이다.

국정원은 4일 입장문을 내고 “송교수의 입국을 앞두고 ‘특정인’을 통해 준법서약서 제출을 요청한 바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국정원의 이같은 요청이 헌법이 보장한 ‘무죄 추정의 원칙’과 ‘양심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준법서약서는 98년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비전향 장기수 등 공안사범을 석방 또는 감형하면서 “대한민국 체제와 법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을 서약하도록 한 것.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비난을 받아온 ‘전향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만들어진 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된 공안사범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로서 송교수처럼 이적행위를 했다는 구체적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법조계의 주장이다.

윤기원(尹琪源)민변 사무총장은 “준법 서약서 자체가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논란이 있는 마당에 수사나 재판을 받지도 않은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보여지니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이며 무죄추정원칙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67년 독일로 건너간 송교수는 이전이나 이후 국내 수사기관에 의해 수배되거나 기소된 적이 한번도 없다.

민가협 남규선 총무는 “89년 임수경씨 방북사건 이후 당시 안기부가 ‘유럽 민협’ 등 해외 한국인 단체들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발표하면서 송교수의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으나 그가 이적혐의로 수배되거나 기소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망명한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씨가 98년 발간한 저서에서 “송교수는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는 당서열 23위의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주장했으나 ‘진술’외에 특별한 증거는 없는 상태.

이에 대해 송교수가 98년 황씨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안상운(安相云)변호사는 “국정원에서 수차례 황씨의 주장이 맞다는 의견서를 보내 왔으나 그 또한 주장일 뿐 물증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송교수는 그동안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나는 진보적 지식인일 뿐이며 남한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변란을 꾀하는 행동은 한 적이 없다”며 “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없으며 법정에서 모든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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