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헌 국회는 입법, 행정, 사법의 분립과 재판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을 만들면서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 대법관을 두도록 했고 이에 따라 48년 8월5일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또 그 해 11월1일에는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5명의 대법관이 탄생했다. 대법관이란 용어는 5·16 이후 1962년 12월 개정된 헌법에서 ‘대법원 판사’로 바뀌었다가 1987년 헌법 개정 때 다시 대법관으로 원상 회복됐다.
▷대법원은 국민의 권리 구제는 물론 ‘무엇이 법인가’를 최종적으로 선언한다는 점에서 1, 2심 법원과 구분된다. 법령 해석의 통일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심을 통해 하급법원의 재판을 올바르게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80년 8월 당시 양병호(梁炳晧)대법원판사는 김재규 내란음모사건 상고심에서 신군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증거가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가 보안사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결국 강제로 법복을 벗기도 했다.
▷엊그제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6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사법시험 합격 순서에 따른 서열을 파괴했다는 대법원측의 설명대로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법과 양심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에서도 이같은 ‘서열 파괴’가 필요한 것인지 의아할 정도다. 그것이 꼭 ‘개혁’인지 의문이다. 이러다간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는 얘기가 법원 주변에서도 나오는 건 아닌지…. 대법원이 이번에 철저하게 산술적 지역 안배를 했다는 점도 서열 파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퇴색시켰다는 생각이다.
<송대근 논설위원>dksomg@dom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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