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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1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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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위원장이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걷는 장면은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아버지 김일성을 앞서가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의 걸음은 빨라지다가도 느려졌고 느려지다가 빨라졌다. 다리가 불편한 김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아버지의 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예정과 달리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직접 마중 나온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정주영 전현대명예회장에게도 매우 공손했다. 김일성주석과 김대통령, 정전명예회장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힘에 대한 동경 있는듯▼
김위원장은 실권을 잡은 뒤에도 주석직 승계를 미루고 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확산금지조약기구를 탈퇴해 한반도에 핵긴장을 불러왔고, 그 상태에서 아버지가 쓰러졌기 때문에 죄의식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김위원장에게는 힘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구와 동경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위원장의 입장에서는 계산된 것인지 모르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번에도 예측을 뒤엎고 김대통령을 직접 영접한 것도 그의 전격성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격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김위원장은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영화는 꿈과 현실을 오간다. 김위원장은 신상옥감독에게 파티장에서 술시중을 들며 미소를 파는 이들을 보고 “신선생, 저것들은 다 가짜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아마도 권력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인식과 불안은 파격과 과시로 이어지기 쉽다.
▼적절한 지지 칭찬 필요▼
김대통령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김위원장은 손짓을 많이 했다.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남북한 인사들을 대했다. 남성다움을 과시하려는 듯한 인상이었다.
김위원장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교적 잘 이끌고 있다. 김대통령은 그의 효심이나 지금껏 어려운 북한을 이끌어온 노고에 대해 지지하고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을 필요 이상으로 몰아세우거나 그에게 지나치게 뜨거운 ‘햇볕’을 쪼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신용구<안양중앙병원의사 · 정치심리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