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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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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정책을 대북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 부합한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교류가 활발해져도 평화공존은 정치 군사적인 측면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난 50년 동안 남북한 모두가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했고 이것이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군비축소를 통해 군사비를 생산투자로 전환하는 것은 남북한 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는 남북한 군축을 실천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북한도 지지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군축협상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장애가 되는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살펴보자.
북한은 주한미군을 군축 문제와 연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작년 8월의 4자회담에서 군축문제를 공식 제의했으나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가장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만 확인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극동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남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역학 관계가 얽혀있다. 따라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실제적인 군축협상은 남북한이 하면서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논의를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군병력은 69만명, 북한은 117만명이기 때문에 기존 병력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축 수를 동일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고 북한은 언제든지 병력증강이 가능한 전시동원체제이기 때문에 병력감축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검증절차를 철저히 함으로써 그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초 국방부는 2015년까지 군병력을 40만∼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북한 역시 62년과 75년 남북한 병력을 각각 10만명 이하로 감축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예를 들면 1단계로 30만명 수준으로 남북한 병력을 감축하는 안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남북한간 군축을 논의하기 이전에 전방부대를 후방에 재배치하고 상대방의 훈련을 참관하며 군사 무기 실태를 공개하는 등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의 추진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무적으로 군축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신뢰회복 조치와 관련한 논의를 병행해도 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으로 사실상 한반도에서의 체제 정통성 시비도 줄어들었다. 남북의 인적 물적 교류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북한 상호 신뢰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통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 군축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미소간의 재래식 무기감축협상에 참여했던 국제전문가들도 지금이 적기라는 평가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남북한간에 평화공존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정몽준(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