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열한살짜리 어른들

  • 입력 1999년 11월 28일 19시 56분


경기도 용인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생 11명이 며칠 전 점심시간에 파출소로 달려가 담임교사로부터 매를 맞았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이 학교 교장에 따르면 그 교사(61)는 미술시간에 찰흙을 던지며 장난을 친 학생 6∼7명의 손바닥을 30㎝자로 한대씩 때렸으며 이 일이 있은 지 나흘 뒤 사표를 냈다고 한다.

▽수업시간의 그 정도 장난이야 개구쟁이들에게 있음직하다. 하지만 체벌이 억울하다고 신고한 행동은 아무래도 개구쟁이짓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파출소를 떠올리면서 말도 맞추어보았을 것이고 신고를 하면 일이 커지리라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이 열한살짜리들의 마음속에 ‘오늘 이나라의 어른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찌감치 들어앉아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자식에게 매를 댔다고 교사를 폭행하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하는 학부모, ‘내 자식이 어떤 자식인데 기를 죽여’라며 맹목적으로 내 아이만 감싸는 학부모, 내 자식을 가르쳐달라고 맡겨놓고도 교사를 우습게 여기는 학부모…. 그런 학부모가 판을 치는데 교사의 체벌을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하거나 교사를 맞구타하는 중고생, 파출소로 달려가는 초등학생이 없을 수 있을까.

▽최근 ‘교권이 실추된 것은 가정교육 부재의 탓’이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달라’고 학교측에 요망한 울산시내 일부 학부모들에게 공감한다. 어느 학부모나 내 자식이 진정으로 귀하다면 학교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와 내 자식에게 보다 엄격해야 할 것이다. 내 아이가 교사로부터 매를 맞았다면 체벌을 응징하려 들기 전에 그 원인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무조건 내 자식만 끼고도는 학부모가 ‘뭐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는 아이’를 양산하는 환경에서 교육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매를 들어선 안된다고 말하려면 학교교육에 대한 희망을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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