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7대 이슈]정권교체와 정계개편

  • 입력 1998년 12월 30일 20시 02분


《격동의 해 98년이 저물어 간다. 올 국내주요 뉴스 중엔 ‘건국 50년만의 첫 정권교체’ ‘분단이후 첫 금강산관광’ 등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굵직한 사안들도 적지않다. 거기에다 IMF체제하의 실업대란과 대기업구조조정 북한잠수정. 간첩선침투에다 총풍(銃風) 세풍(稅風) 등 대형 사건. 사고도 줄을 이었다. 98년, 한해 동안 일어난 주요이슈를 테마별로 정리해본다.》

건국 50년만에 이뤄진 여야 정권교체는 우리사회가 시련과 질곡에서 벗어나 민주화로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척도로 내외에서 평가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1년동안 우리사회의 각 분야는 기층(基層)구조까지 뒤바뀌는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더욱이 정권교체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시작과 동시에 이뤄짐으로써 격랑은 어느 때보다 심했다.

이런 가운데 정권교체는 수십년동안 특정지역이 독점했던 권력의 이동과 기득권층의 역할교대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과정에서 호남인사편중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IMF체제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작업과 맞물리면서 각 분야의 개혁이 추진됐다. 반면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여야의 입장이 뒤바뀐 정치권은 1년동안 비생산적인 정쟁(政爭)으로 일관했다.

여권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한계와 국정경험미비로 원만한 여야관계를 주도하지 못했다. 야당은 권력상실에 따른 박탈감에 사로잡혀 ‘건전한 야당’으로 거듭나는데 실패했다. 이같은 여야의 대립은 여권의 정계개편추진을 초래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정권출범직후 국정에 대한 자신감에서 의원영입 등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數)의 열세’ 때문에 국무총리인준을 비롯해 사사건건 야당에 발목이 잡히자 태도가 변했다.

그 결과 정권출범당시 1백22석이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당의원들을 영입해 의석은 과반수인 1백58석으로 늘어났다. 한나라당은 1백61석에서 1백37석으로 감소됐다. 이같은 움직임이 당적변경이나 ‘여대야소’(與大野小)로의 전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판짜기’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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