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상실한 결정”…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 1심 무죄에 반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27일 11시 22분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26/뉴스1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26/뉴스1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피해자 고 이대준 씨의 유족 측은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들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데 대해 “(법원이) 국가의 판단과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생명보호의무를 간과한 채 판결했다”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유족 측은 27일 입장문을 통해 “전원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일반인의 평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합리성의 한계를 현저히 벗어나 사회적 타당성을 상실한 결정”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 몰이’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피격 은폐 의혹’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26/뉴스1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 몰이’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피격 은폐 의혹’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26/뉴스1
이 사건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이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뒤 문재인 정부가 월북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응한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벌어졌다. 정권이 바뀐 2022년 감사원이 수사를 요청하면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인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가안보실 비서실장이 남북 관계 악화를 우려해 피격 사실을 축소·은폐하고 ‘월북’으로 발표했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2022년 12월 재판에 넘겼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기소된 지 약 3년 만 26일 이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26일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취재)  2025.12.26.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26일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취재) 2025.12.26. 뉴시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법원은 국가가 사용한 ‘월북 가능성이 있다’,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가치 판단 또는 의견 표현으로 보았다”며 “나아가 당시 확보된 첩보와 수사 결과, 표류예측 분석을 종합하면 일반적인 평균인의 관점에서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이러한 1심 법원의 논리는 개인의 사적 의견과 국가의 공식 발표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한 법리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다”며 “국가는 일반 국민과 전혀 다른 지위에 있다. 특히 국민의 생명이 침해된 사건에서 국가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그 자체로 권력적 효과와 규범적 의미를 가진다. 국가의 공식 발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적 진실로 받아들여지며, 이에 따라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인격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건에 대한 인식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표현에는 일반인의 발언과 달리 중립성, 비확정성, 최소침해성이라는 강화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러한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인의 관점’을 곧바로 원용했다”고 했다.

유족 측은 “더욱이 법원이 말하는 ‘평균인의 관점’은 국가가 어떤 표현을 사용해도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며 “당시 상황을 접한 일반 국민이 ‘월북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떠올리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이런 인식만으로 국가가 ‘월북’이라는 표현을 선택해 공식 발표까지 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오히려 평균인의 관점에서조차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면 국가는 더욱 조심스럽고 중립적인 표현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또 유족 측은 “법원은 또한 ‘월북 가능성’과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 사이의 질적 차이를 실질적으로 구별하지 않았다”며 “‘가능성’은 가설적 설명에 불과하지만 ‘판단’은 국가가 특정 서사를 공식적으로 채택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 사건처럼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구조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가가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반복적·통일적으로 사용한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국가 권위로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해양수산부 공무원 故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굳은 얼굴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26일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취재)  2025.12.26. photo@newsis.com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해양수산부 공무원 故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굳은 얼굴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26일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취재) 2025.12.26. photo@newsis.com
아울러 유족 측은 “법원은 국가보호의무와 생명권 보장 원칙을 배제했다”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정보 판단의 적정성 여부가 아니라 국가가 구조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고, 어떤 표현을 선택했는지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22년 10월 감사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구조를 전제로 한 작위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2021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월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국가의 공식 발표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그럼에도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형사처벌 가능성 판단에만 집중하여 국가의 표현 선택이 초래한 인권 침해와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문제를 법리 판단의 영역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유족 측은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형사 무죄 판단이 곧 국가의 책임 부재로 오인될 위험을 낳고 있다는 점”이라며 “형사상 허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공식 발표가 적정했는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결국 이 사건에서 진정한 쟁점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가가 어떤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국민의 생명과 명예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한계”라며 “평균인의 관점에서도 가능성 판단에 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면, 국가는 ‘월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음에도 1심 법원이 일반인의 평균인의 관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가의 공적 표현에 적용되어야 할 법리를 심각하게 오인한 것”이라고 했다.

유족 측은 “검찰은 이 사건에서 반드시 항소해야 한다”고 했다.

유족 측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무죄 판결을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잘못된 판단과 표현으로 훼손된 한 국민의 명예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며 “항소심을 통해 고인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바로잡히고 국가의 판단과 대응 과정 전반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온전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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