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해리 해리스 사령관과 어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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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태평양사령부 해리 해리스 총사령관은 일본계 미국인이다. 작고 다부진 체구를 보면 사무라이가 연상된다. 일본 고베에 살던 어머니는 태평양전쟁 때 미군 공습으로 집과 가족, 친구를 잃었다. 다행히 요코하마에 사는 고모의 도움으로 요코스카의 미 해군기지에 일자리를 얻었다. 1950년대 초반 미 해군 상사이던 해리스 사령관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1956년 요코스카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 농장에서 일한 해리스 어머니는 아들에게 두 개의 뿌리를 가진 데 대한 자긍심을 지니라고 했지만, 일절 일본 말을 가르치진 않았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여파로 반일 감정이 고조된 때였다. 그런 해리스가 일본의 공습을 받았던 하와이에서 총사령관으로 근무 중이다.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리스는 베테랑 해군 항공조종사였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중국을 견제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10월 해리스를 태평양함대사령관으로, 이듬해 9월엔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첫 4성 해군 제독이었다. 지난해 12월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진주만 애리조나함에서 역사적 화해를 할 때 해리스도 옆에 있었다. 일본군이 폭격한 그 자리에 일본계 총사령관에 앉은 그 상황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대가로 해리스 사령관을 자르라고 요구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관영 언론 환추시보는 황당한 보도라면서도 “중국인이 해리스를 싫어하는 것은 맞다”고 실토했다. 지난해 봄 태평양사령부에서 만난 해리스 사령관은 미 함대가 곳곳에 포진한 세계지도를 펼쳐 보이며 “북한과 남중국해가 아태지역에서 최대의 위협”이라며 “예측 불가능한 김정은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도 했다. 남중국해에 해양굴기(굴起)의 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중국으로선 곳곳에 항공모함으로 가로막아선 해리스 사령관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미국 태평양사령부#해리 해리스#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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