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마트시티를 가다]<4>덴마크 보른홀름 섬의 에너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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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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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전기로 ‘누가 모르나’?… 車배터리를 전기창고로 ‘그건 몰랐네’!

덴마크의 작은 섬 보른홀름은 최근 스마트그리드와 전기자동차를 결합한 ‘에디슨 프로젝트’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10분 충전으로 50㎞를 달릴 수 있는 전기를 채울 수 있는 급속충전 시스템(왼쪽)과 보른홀름 섬의 풍력발전기를 등지고 달리는 전기자동차. 사진 제공 오스트크라프트
덴마크의 작은 섬 보른홀름은 최근 스마트그리드와 전기자동차를 결합한 ‘에디슨 프로젝트’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10분 충전으로 50㎞를 달릴 수 있는 전기를 채울 수 있는 급속충전 시스템(왼쪽)과 보른홀름 섬의 풍력발전기를 등지고 달리는 전기자동차. 사진 제공 오스트크라프트
막 활주로에 바퀴를 대려던 비행기를 다시 하늘로 밀어올린 건 강한 바람이었다. 순간적으로 불어온 바람 때문에 고도를 천천히 낮추는 데 실패한 비행기는 바퀴가 공중에 뜬 채로 활주로의 3분의 1을 더 날아갔고 결국 바퀴가 땅에 닿은 뒤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비행기는 그대로 활주로 왼편의 눈밭에 처박혔다. 악명 높은 발트 해의 바람 탓이었다.

어업과 도자기 공예 등으로 생계를 꾸리던 인구 4만2000여 명의 작은 섬인 덴마크 보른홀름은 그동안 이 바람 때문에 몸살을 앓아 왔다. 기자가 탔던 지난해 12월 15일의 보른홀름행 비행기도 바람 탓에 착륙하다 중심을 잃은 것이다. 이런 아찔한 사고는 지난해에만 두 차례 발생했다. 폭풍이 불 때 섬이 몇 시간씩 정전이 된다거나, 건물과 중세부터 내려온 유적지가 손상을 입는 등 피해의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요즘 섬에 부는 바람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풍력 발전에 정보기술(IT)을 더하고 여기에 자동차 산업까지 결합시킨 ‘에디슨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발트해의 어업 자원이 줄어들면서 인구도 함께 잃어가던 이 황량한 바람의 섬은 세계가 주목하는 스마트그리드 실험의 최전선으로 변하고 있다.

○ 에디슨에게서 따온 전기자동차 실험

“이 차로 얼마 전 코펜하겐에 다녀왔어요. 한 번 충전하면 100km는 거뜬히 달리기 때문에 쇼핑도 좀 하고 친구도 만난 뒤 다시 페리에 차를 싣고 섬으로 돌아왔죠.”

‘오스트크라프트’의 마야 펠리시아 벤첸 이사는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디젤 승용차를 개조한 전기자동차를 몰아 지난달 코펜하겐에서 열린 포럼에 다녀온 얘기를 꺼냈다. 이 차는 원래 디젤 승용차였는데 엔진과 연료탱크를 드러내고 그 자리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채워 전기자동차로 개조했다. 벤첸 이사는 “덴마크에서 운행되는 모든 자동차 가운데 73%가 하루에 50km 이하를 달린다”며 “이런 전기자동차는 일상생활을 위한 이동수단으로 최고”라고 강조했다.

벤첸 이사가 일하는 오스트크라프트는 보른홀름 지방정부가 투자해 만든 전력관리 회사로 IBM, 지멘스, 덴마크 최대의 에너지회사 ‘동(Dong)에너지’ 등과 함께 2009년 2월 에디슨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에디슨(EDISON)’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개방형 네트워크를 통한 효율적이고 통합적인 시장의 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s in a Distributed and Integrated market using Sustainable energy and Open Networks)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참여 기업 가운데 하나인 IBM의 최고기술자 앤더스 퀴초우 씨는 “약 100년 전 자신이 발명한 배터리로 전기자동차를 달리게 했던 혁신적인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처럼 우리도 전기자동차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디슨 프로젝트는 보른홀름 섬의 1만5000가구가 사용하는 ‘세컨드 카(Second car)’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기차가 6대뿐이지만 향후에는 섬의 모든 가구가 전기차를 갖게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 프로젝트는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 등의 대체에너지, 전기자동차, IT를 활용한 스마트그리드 사업 등을 결합한 것이지만 기존의 사업들과는 전혀 다르다. 기존의 대체에너지는 태양은 밤에 뜨지 않고, 바람은 불지 않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에디슨 프로젝트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바람이 불거나 해가 떴을 때 발전한 전기를 저장해 둘 수 있는 일종의 거대한 배터리를 도입한 셈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배터리는 값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들은 발상을 바꿔 배터리의 역할을 전기자동차에 맡긴 것이다. 낮에 태양광으로 만들어낸 전력과 바람이 불어올 때 만들어 둔 전력을 전기자동차에 충전한다면 나중에 전기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 그만큼 화력 발전에 들어가는 연료 등을 줄일 수 있고 집에 세워 놓은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에서도 일부 전력을 빼내 다시 섬의 전력망으로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기술은 이를 위해 필요하다. 바람이 많이 불면 섬의 전력 생산량도 늘어나는데 이때는 실시간으로 전기료를 낮춰 충전 수요를 늘리고, 흐리고 바람도 불지 않아 전력 생산이 어려운 때에는 전기료를 높여 충전 수요를 낮추는 게 기본 기술이다. 이에 더해 시간에 맞춰 충전을 하기 어려운 운전자를 위해 운전자가 ‘다음에 운전할 시간’만 ‘스마트콘센트’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전기료가 가장 값싼 시간에 전기를 차에 충전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또 이런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매일 데이터로 쌓은 뒤 이를 분석해 특정일·특정시간의 예상 전력수요까지 미리 짐작한다.

○ 어려움은 도전의 다른 이름

전기자동차에도 약점은 있다. 충전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에디슨 프로젝트 컨소시엄의 기업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자동차 충전을 위한 충전소를 섬 곳곳(4개)에 세웠다. 이러면 기존 전기료 징수 시스템에서는 ‘남의 전기’를 사용하면서 전기료를 내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만든 게 ‘스마트콘센트’다. 콘센트에 특정 전기자동차가 연결돼 전기를 사용하면 전기료는 콘센트에 부과되는 게 아니라 해당 전기자동차의 주인에게 부과된다. 콘센트에서 차량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다 쓴 배터리를 충전된 배터리로 교환해 바꿔 끼워주는 ‘배터리 교환소’도 건설할 예정이다. 이러면 느린 충전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이와 함께 지멘스의 급속 충전기술도 활용했다. 10분만 전기자동차를 충전하면 50km를 달릴 수 있다.

IBM 덴마크 지사의 홍보담당자 카르스텐 그로닝 씨는 “덴마크는 바이킹으로 유명한 뱃사람들의 나라”라며 “대체에너지와 IT, 전기자동차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건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른홀름(덴마크)=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전기 70% 수입하던 섬 ‘에너지 독립’ 선언▼
정부-기업 163억원 투자… 생업 무너진 곳에 다시 활기

보른홀름 섬 주민들이 스마트그리드 실험에 동의한 이유는 청어(靑魚)와 수입 에너지, 비싼 자동차 가격 때문이었다. 보른홀름의 인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계속 증가해 4만8000명을 넘어섰지만 이후 꾸준히 줄어들어 현재는 4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 발트 해의 특산물이었던 청어가 남획과 이상기후로 거의 잡히지 않게 되면서 주력 산업이었던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디슨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다. 섬을 돌아다니는 자동차를 스마트그리드에 연결된 전기차로 바꾸려는 프로젝트에 IBM과 지멘스, 동에너지 등 대기업들이 650만 유로(약 97억 원) 이상을 투자했고, 덴마크 정부의 연구지원 프로그램인 포르스켈(ForskEL)도 440만 유로(약 66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주민들은 기꺼이 새 산업을 받아들였다.

덴마크의 비싼 자동차 가격도 프로젝트 보급에 한몫하고 있다. 덴마크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 말 기준(추정)으로 약 5만6000달러(약 6328만 원)에 이르는 부자 나라지만 좁고 척박한 땅에 인구가 많아 차 값의 2배를 세금으로 매긴다. 그 대신 덴마크 정부는 2015년까지 전기자동차에 한해 이런 세금을 전혀 매기지 않을 계획이다.

또 보른홀름 섬은 에너지의 70% 이상을 스웨덴에서 수입한다. 이를 풍력과 태양광 발전, 바이오연료 발전으로 대체하면 비용 감소 효과가 크다. 보른홀름 정부는 에디슨 프로젝트를 앞으로 ‘에코그리드’라는 사업으로 바꿔 나갈 계획이다. 스웨덴으로부터의 전력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고 자체 생산한 에너지로만 섬을 운영한다는 게 목표다.

보른홀름 중심가인 로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요르겐 헨릭슨 씨는 “이상기후 때문에 생선도 잡히지 않고 고생하고 있는데 전기자동차 사업 덕분에 다시 섬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화제가 됐다”며 “일반 자동차 가격의 4∼5배인 전기자동차 가격이 내려간다면 나부터 한 대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른홀름(덴마크)=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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