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관리비로 500억이상 썼다”…鄭회장 사전영장 청구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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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鄭夢九·68·사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입해 조성한 1000억여 원의 비자금 가운데 500억 원 이상이 현대차그룹 노동조합을 관리하기 위한 ‘노무 관리비’로 사용됐다는 관련자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주로 노조의 쟁의를 무마하기 위해 비자금에서 지출된 노무 관리비는 노조원들에 대한 격려비와 회식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비자금이 노무 관리비로 지출된 것은 한국적인 노사 관행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자동차 생산과 수출이 절박했던 현대차그룹은 회사의 공식자금으로는 거대 노조에 대한 노무 관리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비자금으로 노무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朴英洙)는 이날 정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검찰은 정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鄭義宣·36) 기아차 사장을 불구속 수사한 뒤 정 회장을 기소하는 5월 중순경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들과 함께 사법처리 수위를 정하기로 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01년부터 올해 초까지 정 사장 및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과 공모해 현대차 등 6개 계열사의 회사 돈 1000억여 원을 빼돌려 횡령한 것을 포함해 모두 3000억여 원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채동욱(蔡東旭)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경제 상황과 현대차그룹의 경영상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고심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며 “기업에 불법적으로 손해를 끼친 책임자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채 기획관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피해 액수가 커 사안이 중한 데다 정 회장을 불구속할 경우 임직원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경영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채 기획관은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들의 사법 처리와 관련해 “정 회장 유고에 따른 기업 경영의 차질이 없도록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달 말까지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를 마무리한 뒤 5월 초부터 현대차그룹이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의혹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28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다음 달 1일로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거나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운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으나 정 회장이 주요 사업을 직접 결정해 온 관행으로 볼 때 당분간 대규모 투자나 신규 사업 진출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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